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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mish May 15. 2020

어린 시절, 너와 가장 친하던 것은 나였다

이층 집에서 두 걸음

어린 시절, 너와 가장 친하던 것은 나였다.




좀더 어릴 적, 좁은 단칸방에서 살았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 그땐 막 사업을 시작한 아빠가 꿈을 한가득 안고 일을 해내던 시점이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다 같이 살았었는데 어디서 주무셨던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엄마 아빠와 셋이서 한 방을 썼다. 그것만 기억난다. 물론 그때에도 천진난만했던 기억들이 드문드문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다. 이름도 동화리였던 그곳은 동화 같은 시골 마을이었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욱 깊숙한, 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터를 옮겼다. 그래서 기억에선 마치, 동화마을에서 숲 속 마을로 이사 간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5살 인생에서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집을 처음 본 것이었다. 2층이라니! 만화나 그림책에서만 보던 집이었다. 게다가 2층엔 나만의 방이 있었다. 벽지가 분홍색이었던가? 개나리색이었던가? 아무튼 파스텔 톤의 분위기가 가득한 방이었다. 5살 아이에게 처음 생긴 나만의 방이란 과분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나는 너무 신이 나서 입이 귀에 걸린 채로 하루 종일 뛰어다녔다.

아빠와 함께 신나서 내 방을 들락날락거렸지만, 이내 나는 심통이 나서 방문을 걸어 잠갔다. 오늘까지 오기로 한 새 침대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택배기사 아저씨 흉내를 내며 1인 2역 상황극을 했다. 문을 두드리고, 존댓말을 하며 목소리를 바꾸어 연기를 하였다.


그 대화 소리에 의심 반 기대 반이었지만 알량한 자존심이 있던 나는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한참 동안 닫힌 문 밖에서 나를 달래던 아빠의 소리가 멀어졌다.

문에 기대어 있던 나는 아빠가 화가 나서 돌아간 걸까 하고 문을 열었다. 아빠는 없었다. 시무룩해진 채로 한참을 방 안에서 홀로 있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아빠는 웃고 있었다.



1층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차지였다. 다리가 불편하시니 위층으로 올라오시는 일은 별로 없었더. 다니의 방도 1층이었지만 갓난아기였던 나의 남동생이 자신의 방을 온전히 갖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주방과 가족 식탁도 1층에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아래층’이라고 불렀고, 2층의 명칭은 ‘위층’이 되었다.

거실은 항상 할아버지의 차지였다. 방에 계실 때보다 거실에 나와 계실 때가 더 많았다. 위층은 엄마 아빠의 안방과 내 방이 있었다. 위층의 거실은 아빠의 차지였다. 아빠도 잠을 잘 때 빼곤 거의 거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위층 아래층 상관없이 모두가 거실에 모여 오순도순 있는 날도 많았다. 가족 시트콤을 많이 하던 시절이어서, 다 같이 보고 잠이 드는 것이 관례였다.


이 집과 가장 친하던 것은 나였다고 장담할 수 있다. 어른들은 늘 바빴고, 다니는 너무 어렸다.
나는 집 안에서, 혹은 집 주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다 했다. 진심으로 외롭고 심심할 틈이 없었다.

나에게 위층 거실은 내 방만큼이나 특별한 공간이었다. 엄마 아빠가 없는 낮에는 온통 내 차지였거든.
CD플레이어가 유행하기 전 테이프 사용법을 배웠다. 이층에는 제법 고급진 오디오가 티비 옆에 놓여 있었고, 그걸 다룰 줄 안다는 것이 좋았다. 애가 감성적이었던 건지, 그 전의 기억은 잊어버린 건지 아이다운 곡을 좋아하진 않았다. 다소 어른들의 가요를 좋아했는데, 주주클럽의 믹스테이프에서 ‘나는 나’라는 곡을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놀러 온 사촌 지니와 무니에게도 들려주었지만 나만큼 감명을 받진 못한 듯했다. 

잔잔한 발라드에 금방 지루해진 무니는 가사를 바꾸어 따따따~하며 집 안을 돌아다녔다. 지니도 흥이 나서 갖은 발음으로 바꾸어 불렀다. 이런 명곡을 그렇게 맘대로 바꾸어 부르다니! 나는 언짢아했다. 
타인에게 감성을 전달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마찬가지로 그 오디오를 다룰 줄 알았기에, 다니가 태어나기 전 나와 엄마 아빠는 셋이서 노래방을 다녀오곤 했다는 걸 알았다. 수줍게 발라드를 부르는 엄마와, 옆에서 옹알이하듯 그걸 따라 부르는 내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들었기 때문이다. 들으면서도 그런 기억은 떠올려지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노래방에서 실컷 노래를 부르고 그걸 녹음해서 테이프로 만들어주기도 했단다.
‘민들레 홀씨 되어’라는 곡은 그렇게 알게 되었다.


산등성이의 해질녘은 너무나 아름다웠었지
그 님의 두 눈 속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지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 훨 네 곁으로 간다


아빠도 불렀던가? 아빠가 노래하는 음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박또박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엄마와, 그저 꺄르륵 대던 내 웃음소리가 그때의 화목함을 말해줄 뿐.

내가 좋아하는 동요 하나, 엄마가 좋아하는 민들레 홀씨 하나. 글씨를 읽지도 못하던 나는 엄마 차례가 되어서도 마이크를 놓지 않고 엄마가 읊는 가사를 따라 불렀다.



그때의 엄마가 참 어렸던 건데.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 지금의 나는 아직도 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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