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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mish Jun 22. 2020

새파란 색감이 남아있는 밤

다락방으로 열세 걸음

새파란 색감이 남아있는 밤


다락방 집에서 자는 것은 어린 내게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다.

내 집인 양 편안하게 들락거리던 곳이 밤만 되면 왜 그렇게 무서운 장소로 변하는 건지. 다락방 집에서 자려다 실패한 날은 늘 악몽을 꾸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로 창문에 비치던 괴로운 검은 그림자들을 기억한다. 낮에는 그런 기억마저도 아득하게 느껴지고 별 것 아닌 것 같았는데, 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증폭되어 가만히 잘 있는 이층 집마저 걱정되었다. 


패기롭게 자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지니와 방에서 오순도순 놀다가도, 우리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한 고모가 무니를 혼내기라도 하면 나는 위축되어 집에 가겠다고 울먹였다. 낮에 혼나던 것과는 다른 무서움이었다. 나는 이런 시간, 고모의 보금자리에서의 고모를 본 적이 없으니까. 


누구든 하루를 끝내고 자신의 안정된 공간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법이다. 몰랐겠지만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엄마도 아빠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고모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간 그 공간은 누구에게나 굉장히 사적인 영역이었다. 그 의미를 정확히 몰랐던 어린 나는, 그저 밤이란 존재가 주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왜 그런 밤 있잖아, 칠흑 같은 어둠이 아니라 새파란 색감이 아직 남아있는 그런 하늘의 밤. 어둠이 모든 걸 집어삼키지도 못하여 아주 느릿하게 조명을 끄는 듯한 움직임. 더 어둠이 잡아먹기 전에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불안감. 나는 그런 밤조차도 이기지 못하고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옆 집을 두고 이층 집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의 하룻밤을 번번이 실패하였다.


물론 무니는 우리 집에서 잘만 잤다. 

같이 자는 날이면 우리는 늦게까지 별 것 아닌 주제로 떠들다 잠이 들곤 했다. 스르륵 잠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얘길 끝내고 잘 자! 인사를 한 뒤 입을 다물었다. 

어느 날은, 너무 졸렸다. 무니는 새벽 내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나는 계속 대꾸하다가, 벽을 톡 치면 그게 ‘응’이라고 말하는 것이라는 규칙을 세웠다. 그렇게 무니의 한마디 한마디에 벽을 치다 잠들었다. 잠에 빠지기 직전, 내 신통치 않은 반응에 짜증스러워하는 무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루의 시간으로 따지자면 이 곳의 낮이 밤보다 정겨웠던 것에 비해, 계절로 따지자면 이 곳은 여름보다 겨울이 더 눈에 띄는 곳이었다.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강원도였으니까. 강원도 어느 산골 마을.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 만큼 충분히 많은 눈이 쌓였다. 눈썰매장을 가는 것도 좋았지만, 궁마을이라고 재미가 덜하진 않았다. 뽀득뽀득한 눈은 잘 뭉쳐졌고, 쉽게 쌓였다. 나와 지니가 동그란 눈사람을 만들 동안 무니는 흡사 북 같은 눈사람을 만들어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큰 북 작은북을 뭉쳐 만든 듯한 눈사람은 몇 주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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