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는 아니었지만 이벤트성으로 자주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마 널찍한 야외 공간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아빠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구워 주면 아이들은 그것을 곧잘 받아먹었고, 고기로 어느 정도 배를 채울 즈음 엄마 혹은 할머니가 온 식구가 먹기 충분한 양의 된장찌개를 만들어 왔다.
살랑거리는 바람은 추억을 더욱 다정하게 만든다. 그 바람 덕분에 선선하게 느껴지는 날씨, 실내 어느 공간에서 먹는 것보다 자유롭고 기분 좋았다. 고기를 한 입, 입에 와앙 넣고 폴짝폴짝 잔디밭을 뛰어다니다가 다시 돌아온다. 뛰어다니는 똥강아지와 달리기 시합도 하고, 가끔 엄마 몰래 강아지에게 고기 한 점씩 주기도 하였다.
한 번은 고기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특별한 맛을 경험했다. 여태껏 먹어본 고기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적당히 기름진 고기에서 충분한 육즙이 입 속에 퍼지니 눈 앞이 반짝거렸다.
“고기에서 무지개 맛이 나!”
나는 신나서 소리쳤다. 무니도 얼른 한 점을 와구 먹더니, 맞다고 맞다고 맞장구쳤다.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는 같은 맛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 확신하며 감탄했다.
특별한 날은 종종 두서없이 만들어진다. 아직도 그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노을이 질 즈음부터 시작한 고기 만찬은 새까만 밤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보통 우리는 된장찌개까지 배부르게 먹고 난 뒤 집에 들어가 놀았다. 나름 2차였다. 어른들은 밖에 남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이어갔다.
종종 이층 집 옥상에서도 파티를 하였다.
차이가 있다면 아빠의 외부 손님들이 왔을 때는 옥상에서, 온 가족이 함께하는 모임은 마당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옥상에서 하는 파티는 금방 신물이 났다. 이상하게 별로 재미가 없었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친하지 않은 어른들에게 불편하게 웃다가 내려왔다. 이제 그만 갔으면 좋겠는데, 직접적으로 말하는 건 예의가 없었고 나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층 거실에서 옥상까지 들리게 인위적인 기침을 해대기도 하고, 엄마아! 잠깐 내려와서 나 좀 도와줘-같은 전략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면 엄마 대신 옥상에서 어른들의 웃는 소리가 껄껄껄 하고 내려왔다.
속내를 다 들킨 기분에 머쓱해졌지만 나는 몇 번이고 엄마를 불러대었다.
아빠는 외향적인 사람이었기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우리와도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곤 했기 때문에, 이층 집을 떠나기 전까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