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mish Jun 19. 2020

내 잘못 아니다

다락방으로 열두 걸음


내 잘못 아니다.




주말, 아침 일찍 어린이 만화를 보고 나서 밖으로 나오면 고모부가 항상 다락방 집 주변의 정원을 다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모부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 같았다. 자연스럽게 항상 고모부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다락방 집으로 들어갔다.


남동생 다니가 막 태어난 갓난 아기었기 때문에, 나는 주로 옆 집 사촌 자매들과 놀았다.

사촌언니인 지니와 사촌동생인 무니와 함께 보낸 유년시절이었기 때문에, 나는 맏딸임에도 불구하고 둘째처럼 자랐다. 나는 첫째 언니의 눈치도 보면서 동생에게 양보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몸싸움은 주로 무니와 했다. 주로 다락방 집에서 재밌게 잘 놀다가. 지니 언니랑 싸운 적은 없던 것 같다. 언니는 성격 자체가 무심한 편이었고, 그 와중에 첫째로서의 권위가 있었다.


셋째라 할 수 있는 무니는 그때까지 사실상 막내나 다름이 없었는데, 막내 같은 땡깡을 잘 부리면서도 덩치가 있어서 나에겐 항상 위협적인 존재였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애한테 양보를 해야 한다니, 당시엔 억울하고 화도 많이 났지만 글쎄. 마찬가지로 그 또래였던 내가 마냥 이성적이었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이따금씩 자주 싸우는 우리들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나에게 무니를 때리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나는 한 가지를 알려주면 그 한 가지가 절대적인 규칙처럼 계속 머릿속에 새겨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을 때리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겼다. 하지만 무니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아이였다. 왜 그렇게 이기적이고 고집을 부리는지. 하지만 아빠는 그런 무니가 귀여운지 무니에게 땡깡이라는 과일 이름을 별명으로 붙여주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자, 무니는 또다시 칭얼대기 시작했다. 팔을 들어 나를 세게 치려 하였다.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다.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갈등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방어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니의 두 팔을 잡아 행동을 저지하자, 무니는 더욱더 짜증이 나 큰 소리로 엉엉 울어버렸다. 나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동생을 울렸다는 것도 결코 잘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또 혼이 날까? 혼나는 것에 대한 무서움보다, ‘내가 잘못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나는 괴로웠다.

지켜보던 지니가 다가와 나에게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하지만 정말 내가 잘못한 것이 없을까? 내 기분과 상관없이 동생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었어야 했을까?

둘 중 한 명의 기분이 망쳐져야 한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혼란스러웠다.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이라도 해볼까 싶어, 일기장을 펼치고 펜을 들었다.

'내 잘못 아니다'라고 말해준 지니 언니의 말을 그대로 빌어 그 날의 일을 적었다. 물론 있던 일을 다 써 내려가도 올바른 일이 무엇이었을지 감을 잡진 못했다. 정답이 없는 것만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선생님은 내게 일기를 잘 썼다며 상을 주었다. 당시 나는 사실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았다. 그저 혼란스러웠다.

선생님은 뭘 칭찬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전 11화 우리는 로봇전사였고 탐정이었고 요리사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