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으로 열한 걸음
우리는 로봇전사였고 탐정이었고 요리사였다.
무니는, 우리들 중 가장 자유분방한 아이였다. 떼를 가장 많이 썼고 고모의 속을 많이 썩였다. 그렇게나 혼이 나면서도 기가 죽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무니는 정말 많이 뛰어다녔다. 활발한 아이였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발가벗고 신나게 비를 맞던 아기 무니의 사진은 어린 시절 내내 우리의 얘깃거리였다. 그러한 활동성은 곧 전염되었다.
그래서일까. 세일러문보다도, 요술공주보다도 빠져있는 만화가 있었다.
<지구용사 선가드>의 최종회를 본 후, 우리는 그 애니메이션에 심취하여 선가드를 돌려달라고 시위를 하였다. 어디서 본 걸 따라하는 건지 머리에 두건을 둘러매고, 종이에 큰 글씨를 써 피켓을 들고 올렸다. 푸슝푸슝 소리를 내며 로봇이 된 것처럼 끼긱 거리기도 했다. 사라져버린 만화 주인공이 너무도 애달프고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한 편으로는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를 주행한 쾌감이 밀려왔다. 우리는 한참을 선가드를 외치며 뛰어다녔다. 어린 소녀들이 핑크 공주를 좋아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몰랐다. 우린,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거든.
대신이라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우리는 상황극을 많이 하였다. 모름지기 놀이라는 것은 관찰력이 좋아야 탄생하는 것이다.
어느 날 할머니가 자신의 틀니가 안보인다고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생각했다.
“할머니의 틀니가 사라졌어! 누구의 짓이지?”
“이건 아주 심각한 사건이야. 제대로 조사해야해!”
그렇게 우리는 틀니 실종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할머니를 취조했다. 수사기록이 중요하다며 지니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처음엔 순순히 협조적이던 할머니가, 계속되는 끈질긴 질문에 질색을 하며 성가셔했다. 우다다 위층으로 올라가보기도 하고, 베란다로 뛰쳐나가 틀니가 혹시 날아가고 있진 않은지도 확인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개천을 뒤져보기도, 나무와 꽃들 사이사이를 들쳐보기도 하였다.
마지막에는 지니언니의 자백을 받아내었다.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소름돋을 수가! 여태 같이 수사를 해놓고!
티비에서 보던 그 어떤 수사물보다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지니언니는 특이한 도전을 많이 했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 언제나 나와 무니였다. 요거트와 몇 가지 재료를 가지고 맛있는 요리를 해주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기대감에 가득찼다.
빵을 요거트에 담그고, 아이스크림을 넣는 등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레시피에 우리는 불안해했다. 언니는 곧 괴상한 음식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았다. 우리들은 며느리 잡아먹는 시누이들처럼 이러면 어찌하냐 저러면 어찌하냐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너희들, 자꾸 그렇게 토달면 혼이 날 거야! 모두 엎드려 뻗쳐! 라고 언니가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배운건지 엎드려 뻗쳐라는 동작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었다. 그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할 쯤..이었나.
우리는 꺄르르거리며 엎드렸다. 언니의 요리만큼이나 어정쩡한 자세로. 언니가 결혼할 때쯤 나는 형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로봇전사였고 탐정이었고 요리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