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고독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은, 집으로부터 숨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쩌면 집과 가장 친하던 내가 할 수 있는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가장 멀리 떨어진 마당 끝 텃밭까지 달려 나가면 옆에는 아빠의 간이 작업실이 있었고, 그 뒤편은 우리 가족이 좀처럼 가지 않는 장소였다. 흥미로운 장소도 아니니 굳이 갈 필요가 없던 것이겠지만 나에겐 최고의 장소였다. 집에서 볼 땐 그저 작업실로 막혀있던 뒷배경이었는데, 나아가 보면 또 다른 차원의 문을 연 듯 광활한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시선을 막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아 더욱 멀리까지 잘 보였다. 농부도 집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늦은 오후. 이 세상에 나와 풍경밖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아득함을 느꼈다.
흙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집 밖에서 유일하게 내가 혼자 나설 수 있는 한계가 흙길이었다. 포장도 되지 않은 그 도로는 외길이었기 때문에 종종 두 차가 서로의 코를 맞닥드리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였다. 서로가 양보해야만 지나갈 수 있었다.
자전거나 인라인을 배우게 된 뒤로, 나는 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을 이용하여 종종 나만의 드라이브를 즐겼다. 울퉁불퉁했던 흙길은 그 모양새 또한 굽이굽이 홀로 구부러져 있었다. 그게 오히려 자전거를 타고 놀기 좋았다. 두 발 자전거를 자유자재로 탈 수 있었을 즈음에는 호기심에 자전거를 타고 산 꼭대기까지 갈 기세로 달려보기도 하였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 황토빛깔의 소들을 키우는 목장을 지나 오르막길을 달리다 보면 드문드문 집으로 이어지는 갈랫길이 나왔다. 하지만 우습게도 5분 정도 달려 올라가면 알 수 없는 무서움에 그 너머를 넘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늘 나의 한계는 목장 너머 바이올린 공장.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을 가면 괜히 뒤를 돌아 집을 확인해보다, 이내 방향을 틀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뭐랄까, 그 이상은 모르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특히 굽어있는 외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은 숲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나무들은 청량하고 새소리는 포근한데 왜 그런 기분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너무 어렸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