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으로 열 걸음
다락방 집은 나의 두번째 집이었다
사촌인 지니언니와 무니가 사는 집에는 다락방이 있었다.
우리들의 집은 외관이 비슷했고, 이는 어른들이 의도한 것이었다. 똑 부러지는 아빠의 누나처럼, 고모를 닮은 그 집은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집의 높이는 이층 집보다 낮았지만, 다락방이라는 보물 같은 장소 덕분에 우리는 언제든 탐험을 떠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종종 아무 이유 없이 그 집을 찾아가, 지니언니와 무니가 없으면 동화책이라도 잔뜩 읽다 오곤 했다. 그렇게나 허물없는 곳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책은 <스파게티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였다. 주구장창 스파게티만 먹는 부인을 걱정하는 남편의 유쾌한 이야기. 나는 다락방 집의 서재가 좋았다.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사다리같았다. 좁고 불편해서 그런지 어른들이 올라가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아이들에겐 최고의 공간이었다. 다락방은 아늑했다. 그 곳의 노란 불빛이 나는 좋았다. 지니와 무니에겐 인형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인형들과 많은 모험을 떠났다. 이상하게 그 많은 인형들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직 하나, 나는 길쭉하고 못생긴 핑크 펜더가 그 곳의 상징처럼 선명했다. 진짜 판다처럼 생기지도 않은 요-상한 아이.
지니는 꿈이 많은 언니였다. 그러면서도 욕심이 없었다. 그런 점이 나와 정 반대였고 지금도 그렇다. 어쩌면 욕심 없이 시도해 보는 것이 재능을 키우는 데 더 일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었을까. 무심한 표정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언니가 진심으로 깔깔 웃을때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았다.) 칭얼대거나 땡깡 부리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던 것 같다.
다만 조용히 할 일을 하였는데, 나는 그게 고모부의 성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다락방 집에선 늘 지니의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아 언니가 피아노를 칠 때마다 쪼르르 달려 나가 그 옆에 앉았다. 내가 치는 것보다 언니가 연주하는 걸 듣는 게 훨씬 좋았다. 언니는 피아노를 치다가 바이올린을 배웠다. 태권도도 배웠고, 연기도 하고 싶어 했다. 다락방 집에는 그녀의 연주 모습들이 찍힌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은 거야?”
“아니? 딱히.”
그녀가 하는 모든 일들은 직업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니에겐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된 문장이었다.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림이 좋으니까 화가가 되어야지! 공부를 잘하니까 1등까지 해야지! 하고 늘 조건이 있던 나와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