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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mish Jun 01. 2020

어른은 완벽하지 않다

이층 집에서 여덟 걸음


어른은 완벽하지 않다.


그 시절, 젊었던 나의 아빠는 새벽을 활용하여 컴퓨터 수업을 들었다. 이따금씩 저녁 시간에 가기도 했던 것 같다. 우연히 그 시간에 마주쳤었는데, 두꺼운 책을 들고 가는 아빠가 멋있어 보였다.

아빠도 배울 것이 있구나.


어른은 완벽하지 않다. 나이를 먹어도 배울 것은 여전히 많다. 그러니 빈 공간에 필요한 지식이 있다면 그대로 채워 넣으면 그만이지,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확신도 아빠 같은 본보기가 없었다면 불안정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얼마 뒤 아빠는 나에게 컴퓨터의 세상을 알려주었다. 첫 툴은 그림판이었다. 처음엔 단순한 그림판을 열어 저장되어있던 기본 이미지들에 스프레이를 뿌렸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사달라고 조르지 않아도 원하는 색깔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디폴트로 저장되어 있던 많은 이미지들 중에 아기자기한 집들 위로 함박눈이 쌓이는 그림이 있었다. 동화 속 마을처럼 집들의 지붕이 마치 버섯 모양과 같아, 마음이 더욱 포근해졌다. 이미지들은 어린 내가 외우기엔 어려운 알파벳과 숫자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아빠에게 그 그림을 열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나중엔 위치를 기억하여 스스로 열 줄 알게 되었다.

천리안이 지나간 뒤 초기 윈도우에는 별별 기능이 다 있었다. 노래방 프로그램에서 나는 아빠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틀어다가 따라 불렀다. 그러면 거실에 있던 아빠가 슬며시 방으로 들어와 “우리 딸이 이 노래를 알아..?” 하고 감명한 듯 물어보았다.

난생처음 컴퓨터를 접하고 인터넷까지 할 줄 알게 되었음에도 나는 서툴렀고,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는 수많은 흥미로운 놀이 수단 중 하나에 불과했다. 부모님이 제지할 필요도 없었고 외부의 부적절한 접근도 없었다.

있었어도 몰랐거나. 정말 어린 나이에는 누군가가 악의적인 말을 해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그런 것보다는 내 관심사에 더욱 집중하며 컴퓨터 사용법을 배워나갔다. 하루는, 좋아하는 가수가 이젠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고 한 인터뷰 글을 읽고서는 심난함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날 하루 종일 흙길을 몇 번씩 왕복했다. 가사도 멜로디도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식으로 혼자 유쾌하지 않은 감정들을 푸는 것은 도움이 되었다. 세상 슬픔은 내가 다 가진 것 마냥 우울해했는데, 숨겨야 하는 감정도 아니었으므로 온몸으로 그것을 체감하는- 진정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어린이였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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