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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mish May 28. 2020

아래층 목수와 담배처녀

이층 집에서 여섯 걸음



할아버지는 주로 거실에서 생활하셨으므로 나는 할아버지에게 방이 없다고 생각했다.


민트색 목티를 즐겨 입던 할아버지는 주로 아래층 거실에서 티비를 보며 담배를 피우거나, 밖에서 밭일을 하거나. 매일 신문을 읽기도 했다.


왜 굳이 한 자, 한 자 손으로 짚어가며 소리 내어 읽는 것인지 나는 의아했지만, 즐거워 보였다.


글 읽는 법을 배운 지 얼마 안된 사람처럼.




할아버지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할머니도 그랬지만, 항상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일을 하고, 담배를 피우고, 일을 하고, 소주 한잔 마시고. 그것은 할아버지에게 보상이었다.


나는 집 안에서 담배 냄새를 맡는 것이 싫었지만, 아빠도 뭐라 하지 않는 할아버지에게 뭐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꼬장꼬장한 할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였다.머리가 조금 크고 나서, 나는 할아버지의 옛날 얘기 듣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야기 자체가 재밌었다기보다 질문을 받을 할아버지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난 뒤부터 그랬다.



할아버지는 목수였다.

나에게 목수라는 것은 사람의 몇 배나 되는 커다란 외국 나무들을 전기톱으로 자르는 서양인의 이미지인데!
나라가 어려울 때 혈혈단신 사우디 아라비아로 가 외화를 벌어왔다는 고전적인 사람들 중 하나가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또 다른 직업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아빠가 겹쳐 보이던 것은 그때부터였다. 할아버지도 젊은 아빠였던 때가 있었고, 가장이었다.

소주를 무척 좋아하셨기 때문에, 늘 자신의 전용 컵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바깥에서 신나게 달리며 놀다 집에 들어온 나는 몹시 목이 마른 상태였다. 주방으로 들이닥쳤을 때 내가 보았던 건 물이 가득 찬 할아버지의 전용 컵이었다. 나는 그것을 있는 힘을 다해 쭈욱 들이켰다.

“우엑!!!”

그리곤 1초도 안되어 그것을 도로 뱉었다. 소주였다.
화한 기운이 목 안을 감싸면서 퍼졌기 때문에 괴로웠다.
구부정한 자세로 냉장고에서 안주거리를 찾던 할아버지가 나를 눈치챌 겨를도 없이 나는 그 컵을 원래 자리에 놓고 부리나케 도망갔다. 할아버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상황이 웃기면서도 괴로웠다.





할아버지가 소주를 좋아한 것처럼 할머니는 요구르트를 좋아했다. 냉장고엔 늘 요구르트가 있었다.
지금도 할머니 제사상에는 늘 요구르트를 올려놓는다.



할머니는 담배공장에서 일을 하셨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어린 사 남매, 성질 고약한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할머니는 많이 위축되었다.
그런 시절을 다 겪어내고 늙어버린 후에, 자수성가한 아빠와 여유로운 시골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빠는 위축되고 고단한 할머니의 그 시절이 이제서라도 많이 펴졌으면 했겠지만,
할머니는 늘 걱정과 근심이 많았다. 이제라도 사치를 부릴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아빠의 사업에 고난이 있어 보일 때마다, 자신이 굶더라도 다른 이를 굶기면 안된다고 조언하시곤 했다. 내가 배고플지언정 다른 이의 것은 빼앗지 않는다는 것이 할머니의 신념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더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주로 집안일, 청소를 했던 것 같다. 방 안에서 혼자 가만히 있지 않았고 끊임없이 움직였던 모습들만 기억에 남는다. 오히려 할머니 방은 내가 숨바꼭질을 할 때 유용한 장소였다.

할머니 방에는 광섬유라는 것이 있었다. 나에게는 그저 요상하게 생긴 조명이었다. 작동법을 모르던 나는 이따금씩 할머니에게 그 조명을 틀어달라고 했다. 가느다란 줄기 수백 개가 모여 빨강, 노랑, 초록, 파랑 색색의 빛깔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아주 천천히 돌면서 색깔이 바뀌었기 때문에, 나는 홀린 듯이 그 다채로운 빛을 구경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개념이 멈춰버리고 나는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런 건 대체 어디서 구하는 걸까? 고상하지도 골동품 같지도 않은 모양새인데 묘하게 할머니와 어울렸다.
몰래 들어가고 말 것도 없었지만, 가끔 생각이 날 때 할머니 방에 들어가 그 조명을 구경했다.
 
그 광섬유 조명을 제외하면 할머니 방은 사실 엔틱한 분위기를 풍겼다. 몇 개의 포도주 통과 함께 누런 황소에 기대고 있는, 따뜻한 색깔의 옷을 입은 중년의 남성 모습을 한 도자기 인형은 굉장히 고가의 물건처럼 보였다.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옷장은 붉은 갈색의 오래된 장롱. 숨바꼭질 할 때 숨기 좋았다. 할머니는 옷이 흐트러진다고 혼을 내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와 아이들은 옷장에 숨어 놀곤 했다.
그 외에 할머니를 나타낼 만한 물건이 있었던가? 할머니가 굉장히 아끼는 물건은 없었다. 혹은 할아버지의 전용컵처럼 늘 지니고 다니는 물건도 없었다.

할머니의 즐거움은 뭐였을까?

할머니는 종종 망상을 하곤 했다. 거짓된 상상을 말하거나, 그렇게 생각하기라도 하면 어느 순간 그것을 믿어버려서 엄마가 골치 아픈 적이 많았다.
가령 빨래를 널었는데 바람에 날아가거나 누가 가져가면 어쩌지?라고 생각을 했다면, 그 날 오후 즈음부터는 빨래를 누군가가 가져갔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어쩌다 할머니와 같이 자는 날엔, 악몽을 꾸는 할머니 때문에 덩달아 나도 잠에서 깬 적도 많았다.

나는 할머니가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조차도 제어를 하지 못하고 먹혀버리는 것이라고.
할머니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자꾸 자기를 찾아온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도 거짓된 상상이라고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진심으로 겁에 질려 있었다. 할머니는 몇 년 동안 그 사람을 겪으면서 쇠약해졌다.

할머니에겐 파킨슨 병이 있었다. 그래서 이따금씩 손이나 발을 덜덜 떠셨지만, 사실 그게 큰 위화감이 들진 않았다. 나는 좀 더 젊은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에겐 그저 늘 다 늙은 모습에 약을 한 움큼씩 달고 사는 작은 노인이었다.
싸움을 싫어하지만 할아버지한테는 지지 않고 할 말을 다 하셨다. 말싸움에서 물러서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가 가부장제도에 굴하지 않는 여성상이었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젊었던 시절과 그 시대상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말이 안되는 것이었지만. 할아버지가 이제 이빨이 빠져버린 노인네가 되자 비로소 동등해지고, 발언권을 쥘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유독 할아버지하고는 그렇게 말다툼을 하셨다. 이따금씩 고약해지는 할아버지를 보며 할머니가 싫어할 만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부부는 부부였기에, 훗날 할아버지가 먼저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할머니는 가장 많이 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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