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좋지만 내 삶이 사라질까 봐 불안해
배우 조승우가 처음 뮤지컬 배우의 꿈을 갖게 된 순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누나가 출연한 '돈키호테'라는 뮤지컬 작품을 보고 매료되어 공연이 끝나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뮤지컬 배우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 운명적인 첫 만남의 모습은 마치 첫눈에 반해버린 연인 간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는 그런 타고난 인연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조승우라는 걸출한 뮤지컬 배우의 공연을 보며 다시 한번 이 직업이 정말로 그에게 천직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랑만큼이나 직업에 대해서도 운명적인 만남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일을 처음 접하는 순간 완전히 매료되어 열정을 불태우며 흔들림 없이 매진하여 큰 성공을 이루게 되는 종류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현실에서 이런 운명적인 직업을 만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는 커플이 일부에 불과하듯이 말이다. 현실의 연애에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첫 만남부터 불꽃 튀는 사랑에 빠져버리고 누군가는 서서히 사랑에 스며들어간다. 누군가는 불꽃같이 뜨거운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따뜻하고 편안한 사랑을 한다. 또 누군가는 운명인 줄 알았던 사랑을 떠나기도 하고 누군가는 몰랐던 사랑을 깨닫기도 한다. 이렇듯 사람들마다 경험하는 사랑의 색깔은 모두 다르다. 그리고 사람과의 인연이 그러하듯이 직업과의 인연에도 각양각색의 모습이 존재한다.
선택이라는 측면에서도 연애와 직업은 비슷한 점이 많다. 연인을 만나는 데 있어서 우리가 가진 이론적인 선택지는 70억 개다. 세계에는 70억의 인구가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대략 전체 인구의 0.000000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두 사람이 연인이 되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물리적 시공간이 겹쳐야 하고 그 만남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야 하며 둘 다 연인이 없는 등 타이밍도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리고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70억 명 중 고작 몇 명과 연애를 한 이후에 그중 한 명을 배우자로 최종 결정한다. 그런데 이런 선택의 한계는 직업선택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직업이 있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해볼 수 있는 일은 고작 몇 개뿐이다. 예체능의 경우 어린 시절 우연히 본 뮤지컬 공연, 우연히 접한 트럼펫, 우연히 배운 스케이트가 인생의 진로를 결정한다. 공부를 계속한 학생들이라면 고등학생 때의 문과/이과 선택, 이름만 보고 고른 대학 전공, 그리고 대학생활을 하며 우연히 들은 수업이나 아르바이트, 인턴경험이 인생의 진로를 바꾸어버린다. 아주 사소한 경력이 자소서에 쓸만한 스펙이 되고 내 스펙을 인정해줄 만한 분야의 회사를 찾아 지원하다 보면 그렇게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직업이 정해져버리기도 한다. 내가 한 그저 몇 번의 선택과 경험들이 삶의 물꼬를 움직여 지금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고작 몇 개뿐이다. 그리고 살면서 우리가 하는 선택들은 대체로 최선이 아닌 최적의 찾는 것이다. 다시 한번 연애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세상에는 70억의 인구가 있으니까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가치관 성격 취향이 모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영혼의 단짝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튼 나는 그 영혼의 단짝을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만난 0.0000001%의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사랑하기로 정했다. 가끔 싸우고 오해하기도 하며 서로 노력해서 맞추어가야 하는 사람을 말이다. 적성도 이와 마찬가지다. 어쩌면 나는 주짓수에 재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숨겨진 체스 천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튼 나는 주짓수도 체스도 해보지 못했다. 그저 내가 우연히 겪은 몇 개의 경험 덕분에 지금의 회사에 들어왔고 거기서 다시 몇 개의 우연을 거쳐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으며 이 일 그리 나쁘지 않아서 지금까지 계속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적성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나와 안 맞지 않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연애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많은 연인들이 서로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음에도 내가 견딜 수 없는 차이 때문에 헤어진다. 보통 둘이 잘 안 맞는다고들 얘기하는 문제이다. 연애의 과정에서 누군가는 너무 연락이 잦은 연인을 힘들어하고 누군가는 너무 연락이 없는 연인을 못 견뎌한다. 누군가는 너무 걱정이 많은 연인을 답답해하고 누군가는 너무 계획이 없는 연인을 불안해한다. 그리고 이렇게 실패한 연애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내가 무엇을 못 견뎌하는 사람인지 배운다. 이건 직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몇 번쯤 '이 길이 내 길은 아니구나'를 경험한다. 누군가는 성취지향적인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지만 만만치 않은 업무강도에 놀라며 자신에게는 워라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누군가는 워라벨을 찾아서 직업을 선택했지만 일에서 따분함을 느끼며 자신에게는 성취감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적성을 찾아가는 일은 어쩌면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통해 나에게 맞지 않는 선택지를 지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불꽃같은 설렘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이들은 뜨거운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 일이 내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의 모양과 색깔이 각양각색이듯 직업에서의 적성도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어떤 사랑은 두근거림보다는 편안함에 가깝듯이 어떤 일들은 계속 지속할만하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나의 적성 인지도 모른다.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힘든 웨이트 트레이닝을 견디며 기초체력을 길러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 속에는 괴롭고 견뎌야 하는 노가다의 순간이 존재한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이 견딜만하다면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그 일은 나의 적성 인지도 모른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한 번쯤 그 일을 도전해보자. 그런데 꼭 하고 싶은 일은 없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 적성이 아닌 것 같아 불안하다면 조금은 관대한 마음으로 내 일을 지켜봐 주는 것도 좋겠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에게 어릴 적의 소꿉친구가 연인이 되어 나타났듯이, 어쩌면 내 일이 아니라고 믿었던 그 일이 사실은 내 운명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