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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엘리스 Oct 24. 2021

#014. 안정과 변화 사이

월급은 좋지만 내 삶이 사라질까 봐 불안해

돌이켜보면 내 마음은 늘 안정과 변화 사이를 오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나에게 안정 따위는 시시해 보였다. 더 넓은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수능을 치고 나서 엄마는 안정적인 교대로 진학하라고 권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서울로 가겠다고 말했다. 학생으로 살아온 나에게 학교 선생님의 삶은 대충 예측할 수 있었고, 내가 아는 세계 너머에는 훨씬 더 근사하고 멋진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서울에서 나의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한편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생이 되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 무렵 나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너무나 불안하고 초조해서 견딜 수 없었다. 잔뜩 환상을 품고 온 서울도 이제 시시해졌다. 어디든 다 그냥 사람 사는 곳이었다. 중요한 건 내 삶을 안정적으로 지속해나가는 것이었고 그제야 나는 내 삶을 지탱해줄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절박하게 원했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 나자 마음은 또 달라졌다. 위태롭게 느껴지기만 하던 미래가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자 그제야 내 마음속에 작은 물음표 하나가 피어올랐다. 근데 이게 내 인생의 전부인 걸까. 회사에서 겪는 매일의 일상, 그리고 회사에서 만나는 선배들의 모습은 마치 내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삶이 긁어버린 복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안정된 지금의 일상이 좋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지금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특히 퇴사를 하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유튜버들의 영상을 볼 때면 나는 딱히 세계일주를 꿈꾼 적은 없으면서도 괜히 마음이 심란하고 불안해졌다. 정말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한 번뿐인 인생인데 뭔가 좀 더 용기를 내야 하는 건 아닐까?  

 


변화와 통일성을 좋은 음악을 만드는 구성 요소이다. 이 둘의 균형이 잘 이루어질 때 좋은 곡이 완성된다. 그리고 삶도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정과 변화 두 가지는 모두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한 필수적이 요소이다. 특히 회사원으로, 그리고 사회인으로 산다는 것은 취업을 하고 이직을 하고 전직을 하며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내게 맞는 균형점을 찾아가는 일이다. 직업탐색의 과정에서 우리는 안정과 모험 사이를 오가며 나에게 맞는 나의 무게중심을 찾아나간다. 


나는 안정이 정말로 중요한 사람이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온 몸으로 철저하게 깨달은 사실은 내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불안정을 못 견뎌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으며 '나는 소유보다 존재를 추구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다짐했다. 가끔 길을 걷다가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문구가 붙은 광고판을 보면서 혼자 몰래 코웃음을 쳤다. 고작 내 집 마련이 어떻게 꿈이 될 수 있지. 하지만 혼자 자취를 시작하면서 그제야 나는 공간이 얼마나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았다. 값이 싸다고 덜컥 계약한 반지하 원룸에서는 늘 공기 중에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났고 햇빛이 들지 않는 집에서 점심시간이 다되도록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우울하고 무력해졌다. 집은 생각보다 삶의 행복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물론 부자들이야 오히려 자기 소유의 집 없이도 호텔에서 살며 세계 곳곳을 누비고 살 수 있겠지만 그건 나와 같은 보통사람에게는 불가능했다. 소유하지 않고 사는 것이야말로 더 큰돈이 필요한 생활양식이었고, 돈 없는 사람이야말로 쫓겨나지 않고 인간답게 살만한 공간을 얻기 위해 내 집을 원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특히 나는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 하루 종일 돈 생각밖에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당장 내일의 밥값이 없는 순간이 되자 머릿속은 오로지 돈을 구할 궁리로 가득 찼다. 나는 고흐처럼 밥을 굶으면서도 그림을 생각할 수 있는 예술가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내 깜냥에 맞는' 삶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내 자신의 선을 존중하면서 스스로를 배려하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여전히 변화의 순간을 꿈꾼다. 삶에서는 안정적이고 확실하고 유용한 것이 아니라 새롭고 불확실하고 무용한 것들만이 줄 수 있는 생기와 활력이 있다. 내일의 더 큰 수확을 위해 오늘의 땀을 흘리는 그런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유용한 일들 대신에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오늘의 기쁨을 위해 몰두하는 그런 쓸모없고 비효율적이고 무용한 일을 하는 순간은 나를 바로 오늘에 존재하게 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요즘 개인적으로 하는 작은 프로젝트가 있다. 이름하여 '24시간 프로젝트'이다. 주말의 하루를 잡아서 내가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삶의 양식으로 24시간을 살아보는 소소한 프로젝트다. 만약 내가 빨리 은퇴를 하게 된다면, 그래서 하루 전체를 오롯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다면 그때의 나의 하루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그 24시간을 미리 한번 체험해보는 것이다. 멀리서 동경하는 것과 실제로 해보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간극이 있다. 피아노를 잘 치고 싶지만 손가락 연습은 어렵고 내 책을 갖고 싶지만 문장을 고민하는 것은 힘들고 웹툰을 그리고 싶지만 채색을 하는 것은 귀찮고 근사한 집밥을 차리고 싶지만 설거지 감을 보면 한숨만 쌓일 수도 있다. 24시간 프로젝트는 내가 동경하는 삶을 조금이나마 직접 경험하면서 이 삶이 정말 나에게 지속 가능한 삶인지를 확인해보는 것은 것이다. 이런 연습은 회사 밖의 삶에 대한 과도한 환상으로 지금의 삶을 폄훼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언젠가 있을 퇴사 이후의 삶을 어떤 일상으로 채울지 아주 구체적인 모습으로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나는 '실패해도 괜찮은 24시간'이라는 특별한 기회를 선물 받는다. 나는 실패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사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금수저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실패를 통해 배우고 다시 도전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실패할 기회야말로 우리가 이 사회에 원하는 진짜 사회적 안전망이다. 소심한 나는 경제적으로 아주 큰 투자 같은 것은 하지 못하겠지만은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내 자신에게 지금과는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한다. 내 삶 속에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일, 그것이 내 삶을 예상치 못한 기적으로 이끌어주기를 기대해본다. 


변화와 안정 두 가지는 모두 내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변화와 안정 사이에서 내게 맞는 최적의 레시피를 찾아가는 일은 어쩌면 내 자신을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견디지 못하는 것들을 배려해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존중하면서 내게 주어진 사회적 제약 안에서 고통의 총량을 줄이고 행복의 총량을 늘리는 일은 아마도 내가 앞으로 평생 찾아야 하는 인생의 연금술일 것이다. 그리고 아주 보통의 내 삶을 배려하고 존중하려는 따뜻한 노력은 동시에 아주 보통의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다정한 배려와 존중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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