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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엘리스 Oct 24. 2021

#015. 평범함에 대하여

월급은 좋지만 내 삶이 사라질까 봐 불안해

나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이다. 지금까지 인사평가에서 한 번도 S를 받아본 적이 없고 그렇다고 C를 받아본 적도 없는 정말로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직장인이다. 물론 회사 안에서도 특별한 사람들은 존재한다. 스티브 잡스처럼 세상을 바꾸는 기획자도 있고 스티브 워즈니악처럼 독보적인 기술자도 있으며 애플의 창업자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회사가 성장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인재도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아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솔직히 나는 얼마든지 경력사원을 뽑아서 대체 가능한 일을 하는 평범한 일개미 중 하나로 살아가고 있다. 삶과 열정을 바쳐 일하기보다는 미지근한 마음으로 일하고 퇴근 후의 내 삶을 더 소중히 여기는 그런 아주 평범한 회사원 말이다.   


그런데 가끔 서점에서 회사와 관련된 책들을 보다 보면 괜스레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 실리콘벨리의 리더십, 섬김의 리더십, 공감의 리더십.... 회사와 관련된 책들을 둘러보면 온통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사실 현실의 모두는 리더가 될 수 없고 모두가 리더가 될 필요도 없다. 온통 리더가 되라고 하는 외침들 속에는 나와 같이 머리보다는 꼬리, 엔진보다는 부품, 1%보다는 99%에 가까운 평범한 회사원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나와 같은 평범한 회사원들에게는 리더와는 다른 덕목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어쩌면 나와 같은 평범한 회사원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을 성공하는 사람들의 리더십 기술보다는 오히려 오늘의 근무가 견딜만하도록 도와주는 어회행회(어차피 회사 다닐 거 행복하게 회사 다니자)의 기술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한 사람의 베테랑 일개미로서 회사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어회행회의 1번 기술을 꼽자면 나는 바로 '평범함에 대한 존중'을 꼽고 싶다. 


어린 시절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미래의 꿈나무로 길러졌다. 우리 집을 비롯해 꽤 많은 친구 집에는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집이 책장 한 구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우리는 훌륭한 위인들의 일화를 들으면서 마음속이 뭉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취업을 하고 학생의 세계를 벗어나면서 어린 시절의 무한한 가능성은 아주 구체적인 현실의 모습으로 좁혀져 버렸다. 바로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특별한 미래를 꿈꾸도록 길러졌지만 현실의 우리 대부분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저 평범한 어른으로 자란 우리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동의어 인지도 몰랐다.  


평범함에 관해 떠올릴 때면 특히 기억나는 영화가 하나 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 보았던 '너는 특별하단다'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다. 그 무렵 이 애니메이션이 교육 분야에서 조금 유행을 했던 모양인지, 나는 이 영화를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한 번, 학교 수업시간에 한 번 그렇게 두 번이나 보게 되었다. 주인공인 나무인형 펀치넬로는 사고뭉치여서 마을 사람들에게 비난의 뜻이 담긴 '잿빛 점표'를 잔뜩 받는데,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을 만든 목수 아저씨를 만나 너는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몸에 붙어있던 잿빛 점표가 떨어지게 된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충분히 감동적인 이야기지만 목수 아저씨의 '너는 특별하단다'라는 말은 그 시절 나에게 어딘가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목수아저씨는 평범해도 괜찮다는 말 대신 왜 굳이 네가 특별하다고 하고 말했을까. 어쩐지 이 말은 그 시절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특별함에 대한 강박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국어사전에서 찾은 특별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다'이다. 그러니까 특별하다는 단어 안에는 그 정의에서 이미 대조군으로서의 보통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특별하다는 말에는 어디에도 대조군으로서의 보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조군이 없는 이 말은 우리 모두가 일등이라는 말만큼이나 무의미하고 공허하게 들린다. 모두가 특별하기 때문에 나도 특별한 거라면 그건 결국 내가 하나도 특별하지 않다는 말과 같은 뜻 아닌가. 물론 '너는 특별하단다'라는 이 말은 우리 모두가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개별성과 가치를 갖는 고유한 존재임을 말하려는 의미일 거다. 하지만 왜 굳이 여기에 '특별하다'는 이름표를 붙인 것일까. 이런 무리수야 말로 평범함란 그렇게라도 감춰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평범함을 나쁜 것으로 전제하는 잘못된 믿음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진짜로 안심을 주는 것은 어쩌면 모두가 특별하다는 기만이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삶도 귀하다는 말이다. 내 스스로를 사랑하고 내 삶을 존중하기 위해 진짜로 필요한 것은 바로 평범한 삶에 대한 존중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특별한 사람만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리 예쁘지도 않고 그리 매력적인 성격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예쁘고 매력적이고 특별한 사람이 되면 그때야 비로소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사랑받을만하지 않지만 언젠가 나중에 특별해지면 그때는 가능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런 지질한 마음의 뒷면에는 사실 한심한 오만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 마음의 뒷면에는 내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나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이것은 나와 타인을 동시에 모욕하는 생각이었고 이런 나쁜 마음은 다시금 특별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에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의 맷집을 포함한다. 내 욕망에 솔직하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과 이상의 간극 사이에서 노력하는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것이 성숙한 어른의 태도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인생에서 가장 서럽게 울어본 적은 어린아이 때였다. 그때는 아주 작은 일에도 금세 서러워져서는 숨을 헐떡거리며 울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내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고 좌절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일도 훨씬 더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의 삶은 언젠가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피할 수 없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불호'의 순간을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 불호의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영혼의 깊이가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속의 숭고함은 삶이 반짝거리는 특별함의 순간이 아니라 인생이 내뜻대로 되지 않는 비루함의 순간에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린 시절의 눈으로 보기에는 조금 실망스러운 지금의 이 평범한 순간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내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내 영혼을 한 뼘 성장시키는 순간은 아닐까.   


어쩌면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야말로 인간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꿈꾸는 아주 자연스러운 보통의 욕망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속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과 애정과 기대가 숨겨져 있다. 다만 오늘 하루의 삶이 더 견딜만하기 위해서는 특별하고 싶다는 이 자연스러운 마음이 자신에 대한 비난과 타인에 대한 모욕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부당한 비난을 멈추고 평범하고 성실한 우리의 일상을 좀 더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봐줄 때 내일의 우리는 '어차피 회사 다닐 거 좀 더 행복하게 회사 다닐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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