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좋지만 내 삶이 사라질까 봐 불안해
대학생 시절 '공학전자계산'이라는 코딩 과목 수업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개발자가 있다고 한다. 프로그래머와 코더가 그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새로운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사람은 프로그래머, 구현되어 있는 라이브러리를 불러와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은 코더라는 것이다. 컴퓨터공학 전공자의 자부심이 녹아있는 말이지만 현실에서 이 둘이 정확히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굳이 나를 분류하자면 나는 프로그래머보다는 코더에 가까운 사람이다. 나는 전산 쪽 업무를 하고 있는데 벌써 몇 년째 하루 종일 이 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게 아직 컴퓨터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존재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구글 검색과 개발환경의 소스 자동완성 기능 없이는 코딩을 하지 못하는 아주 평범한 코더다. 그런데 IT회사에 다니다 보면 가끔 정말 컴퓨터가 신체의 연장(延長)인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꼭 가만히 걷다가도 종아리에 모기 물렸다는 사실을 저절로 알아차리듯이 그렇게 모니터의 에러 메시지를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프로그래머라는 말에 어울리는 존재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기보다는 그저 신기하고 놀라워 경탄만 나올 뿐이다. 그냥 이들은 나와는 다른 종족, 그러니까 반인반컴(?)의 신인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직업에 있어 우리가 갖는 주된 이상 중의 하나다. 우리는 99%가 아닌 1%, 부품이 아닌 엔진, 자신의 이름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그런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이 이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나는 1%보다는 99%, 리더보다는 부품에 가깝다. 그리고 나는 내가 회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물론 나도 내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만약 내가 갑자기 회사에서 사라지면, 물론 남은 사람들이 한동안 제법 고생을 하겠지만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사람이 뽑히고 모든 일들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문제없이 돌아가리라는 것을 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은 내가 없으면 절대 안 돌아갈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없어서 안 돌아가는 회사일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만큼의 경력은 쌓였다. 그리고 이런 냉정한 현실은 내 마음에 고민을 불러일으켰다. 대체 가능한 노동을 하며 사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누군가는 내 노동이 대체 가능하다고 말하는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말할지도 모르다. 어린 시절의 정주영 회장이 너무 일을 잘해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쌀집을 물려받았다는 이야기처럼 세상 모든 일은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일이라도 자신만의 특별한 구석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이다. 편의점 알바를 해도 자신만의 상품진열 노하우로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고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해도 센스 있는 서비스로 손님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유명한 CEO들의 성공신화를 보면 그들은 아주 평범한 일을 탁월하게 해내서 전에 없던 특별한 기회를 손에 넣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들은 기본적으로 몰개성하다. 우리는 책을 고르거나 전시회에 갈 때 작가가 누구인지를 중요하게 고려하지만 지하철을 타거나 택배를 받을 때는 누가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전자의 경우 노동자의 개성이 산출물의 본질적인 특성을 결정하지만 후자의 경우 노동자의 개성은 친절한 응대 등의 부수적인 차이만을 만들 뿐이다. 특별히 안전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한, 어쩌면 우리는 AI나 드론이 운송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그 차이를 크게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든 일에서 개인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지만, 내가 자기만의 색깔로 일한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대체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게다가 평범하게 일하는 것이 잘못도 아니다. 자신만의 특별함을 만드는 것은 개인의 선택일 뿐, 모두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해 보이는 일도 자신만의 개성으로 비범하게 하는 장인들에게 일은 몰입의 기쁨과 성취의 보람을 준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일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배달음식을 시키면 모든 가게들이 손편지를 적어주는 세상은 조금 끔찍하지 않나.
대체 불가능한 노동의 신화에는 두 가지 바람이 숨겨져 있다. 그 하나는 내가 하는 일을 멋지게 해내며 그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은 자아실현의 바람이며 다른 하나는 이를 통해서 확실한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존에 대한 바람이다. 그리고 이렇듯 직업의 영역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려는 노력은 일에 대한 책임감과 애착을 만들고 일에서 재미와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 있어 우리 모두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내가 하는 일이 남들에 의해 충분히 대체 가능한 아주 평범한 노동이더라도 그것 자체로 이미 충분히 가치 있다. 우리가 진짜 집중해야 하는 것은 '대체 불가능한'이라는 수식어가 아니라 '노동'이라는 명사다.
내가 모두가 사용하는 프레임워크를 사용해서 아주 뻔한 양산형 홈페이지를 만들었더라도, 그렇게 누구나 대체 가능한 일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필요하고 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내가 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훌륭하다. 대체 가능한 노동에 대한 존중은 나에 대한 존중이자 내가 제공받는 모든 익명의 노동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세상에 어떤 기계도 엔진만으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부품으로 살아가고 있다. 충분히 훌륭하고 충분히 멋지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