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좋지만 내 삶이 사라질까 봐 불안해
가끔 연탄재를 발로 차고 싶은 순간이 있다. 갑자기 ‘너는 한 번이라도 뜨거웠던 적 있느냐’며 느닷없이 질책을 받는 순간이다. '그래, 내일부터는 더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면서도 왠지 그동안 내가 잘못 살아온 것만 같아서 마음이 씁쓸해진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억울함이 피어난다. 도대체 얼마나 뜨거워져야 혼나지 않는 인생이 되는 걸까?
우리의 마음은 종종 온도로 비유된다. 뜨거움, 열정, 끓는 피 같은 말들이다. 이때 높은 온도는 대체로 사랑과 노력을, 낮은 온도는 무관심과 미움을 의미한다. 그중 특히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최선을 다하는 일은 100℃라고 표현된다. '물을 100℃에서 끓는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99℃가 아니라 꼭 100℃가 되어야 물이 끓기 시작하듯이 적당하고 애매한 노력이 아니라 한계를 넘는 열정을 쏟아야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런 말들에 부상투혼을 펼친 슬램덩크의 강백호나 주말도 없이 절박하게 일하던 미생 장그래의 모습을 떠올린다. 자신을 '하얗게 불태우는' 이들의 드라마에서 우리는 일종의 숭고미를 느낀다. 하지만 이런 누군가의 뜨거운 드라마를 보다 보면 어쩐지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져 마음 한편이 조금 씁쓸해진다. 그런데 왜 내 삶에는 저런 뜨거움이 없었던 걸까?
물론 마음에 온도계 따위는 없지만, 만약 마음의 온도를 측정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의 온도는 아마도 '미지근'일 것이다. 어린아이의 세수 물 정도의 온도 말이다. 출근하면서부터 벌써 퇴근하고 싶고 주말이 끝나자마자 다음 주말을 기다리는 나는 뜨거운 열정보다는 덤덤한 책임감으로 일상을 꾸려나가는 미지근한 사람이다. 그리고 아마도 많은 회사원들이 나와 비슷할 것이다. 생계를 위해 시간을 팔아 돈을 사는 이들이라면 아마 꽤 많은 수가 나와 비슷한 미지근한 마음으로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회사원의 마음이 미지근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회사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내 꿈이 아니라 타인의 일이다. 게다가 돈을 받고 하는 일이기에 하기 싫은데도 꾹 참고 해야 하는 것들도 많다. 오롯이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일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이 100℃까지 끓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현실에서 삶을 바꾸어내는 진짜 노력은 드라마에서처럼 가슴이 벅차오르는 투혼의 순간이 아니라 힘들고 지겨운 묵묵한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습관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은 하기 싫은 마음이 드는 순간이라고 한다. 그때 끙차 하고 일어나 하던 일을 계속해야만 습관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진짜 우리의 삶을 바꾸는 시간은 미지근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주 보통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축구선수의 화려한 드리블 뒤에는 지겨운 웨이트 트레이닝의 훈련이 있고 피아니스트의 화려한 연주 뒤에는 따분한 하농의 손가락 연습이 존재한다. 내가 좋아서 쓰고 있는 이 글조차도 책상 앞을 서성이며 몇 번이고 첫 문장을 썼다가 지우는 괴로움의 순간을 필요로 한다. 세상 모든 일에는 재미와 짜증, 즐거운 것과 지겨운 것들이 섞여 있다. 우리는 막상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힘듦을 느끼고 남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도 그 속에서 재미를 찾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바치는 진짜 열정은 대체로 덤덤한 노동과 착실한 노가다로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을 바꾸는 진짜 열정은 뜨거움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미지근할지언정 오래 식지 않는 단단한 마음일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남자 친구를 만날 때마다 청심환을 먹었다. 너무 설레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제대로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로서는 해본 적 없는 경험이라 내심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청심환을 먹는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 아니라 서로에게 편안해지는 사랑도 진짜 사랑이듯이 뭉클하고 뜨거운 감정만이 열정이 아니라 덤덤하고 미지근한 마음도 충분히 열정이다. 그러니 열정에 대한 비현실적인 환상으로 자신을 비난하기보다 미지근한 온도로 일하는 나를 더 존중하고 격려해주자. 우리는 서로의 미지근한 노동 덕분에 의식주를 공급받는다. 컴퓨터를 켜고 타자를 치는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것들도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미지근하지만 꾸준한 노동에 빚지고 있으며 그 성실한 노동이 모여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 그러니까 미지근한 노동에 대한 존중은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나에 대한 존중이자 나와 함께 이 세계를 지탱해나가는 모든 타인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뜨겁게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귀하다.
그리고 뜨겁지 않은 순간도 자신의 일을 지속하는 노력은 더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