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 봉가완 투어
어제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하여 바로 잔 다음, 오전에 호텔에서 쉬고 나니, 곧 투어시간이 다가왔다. 예약된 여행사 상품이라 오후 2시에 픽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호텔 앞에서의 픽업이라 여유롭게 준비하고 나갔다. 이번 투어는 원숭이 섬에 가서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고 선셋을 구경한 뒤 돌아오는 길에 반딧불을 보는 일정이었다. 사실 원숭이에 대해선 최근 유행하고 있는 원숭이 두창이 생각나 우리끼리 하는 우스갯소리로 원숭이 두창에 걸리고 오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했던 것 같다.
여행사도 이를 의식했는지, 이 섬에 사는 원숭이들은 원숭이 두창 환자를 낸 적이 없다며 공지를 했다. 그 덕분인지 그 부분에 있어선 큰 고려 없이 일정대로 투어를 진행했다. 오후 2시가 되어 가이드 두 명이 승합차를 끌고 와 우리를 태운 뒤, 코타키나발루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봉가완으로 우릴 데려갔다. 예상보다 차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최근에 본 범죄도시 2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너네 납치된 거야." 이 대사가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만약 이 상황이 진짜로 온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말레이시아 대사관 번호를 찾아보는 등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속 편하게 잠을 잤다.
다행히 그런 상황 없이 봉가완에 도착을 했고, 우리는 아마존 익스프레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같은 움막집에 앉아 가이드의 안내를 들었다. 가이드는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었는데, 꼭 지켜야 할 규칙이라고 강조를 했다.
첫 번째. 원숭이를 만지지 말 것
두 번째. 원숭이에게 큰 소리를 내지 말 것
세 번째. 원숭이와 눈을 마주치지 말 것.
가이드는 자신들이 원숭이들과 비즈니스 관계라고 칭하며, 함부로 원숭이를 대하면 자신들에게 협조를 안 해주어 다음 투어가 어렵게 될 거라고 설명을 했다. 나는 여행사와 원숭이 사이에 계약서가 있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을 했지만, 오랜 관습으로 맺어진 협약 같은 것이라고 이해를 했다.
그렇게 보트를 탄 뒤 아마존의 탁류 같은 강을 건너며 원숭이들이 있나 관찰을 해봤다. 나는 생각보다 놀랐던 게 인간의 손때가 묻은 것 같은 관광지 같았는데, 의외로 동식물의 종류가 다양했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새들도 있고, 큰 도마뱀들이 많았다. 실제로 원숭이도 존재하여 나무를 타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신기해서 원숭이 사진을 찍어댔고, 가이드는 이제 시작이라며 바나나를 나눠주며 세부적인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가이드는 이 원숭이들에게도 사회와 위계질서가 엄연히 있으므로, 그들의 법칙을 어느 정도 따라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특히 원숭이들에게 왕이 있는데 그 녀석의 이름은 킹이고 왕비는 메리라는 이름을 가진 원숭이였다. 그들에겐 특히 조심히 대해줄 것을 당부했다. 마지막 주의 사항을 마친 뒤 가이드는 관광객들에게 바나나를 하나씩 나눠주었고, 어느 지점에서 휘파람을 세게 불었다.
그러더니 정말 원숭이 떼가 속속들이 나타나는데, 먹이 시간이라도 된 걸 알듯이 강 쪽으로 뻗은 축 늘어진 나무줄기를 통해 배로 침공을 하는 듯이 올라탔다. 그러고서는 관광객들이 들고 있는 바나나를 하나씩 획 낚아채가 옴뇸뇸 먹고 배 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나는 마침 그 가이드가 말한 메리라는 원숭이가 내 걸 먹었는데, 원숭이에게 먹이 줄 때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겸연쩍은 듯이 먹이만 쓱 줘야 하는 예절을 잘 지켰다. 메리 뒤에 여러 원숭이가 있었지만, 역시 왕비라 그런지 바나나를 자기만 독식하려는 듯이 다른 원숭이들을 쫓아내는 행동을 보였다. 다른 원숭이들은 또 메리가 그러는 것에 대해 아무 불평을 못하고 쩔쩔매듯이 주변만 돌아다녀, 보는 내가 측은지심이 들 정도였다.
나는 메리가 다른 데로 가길 기다렸다가 다른 원숭이에게도 먹이를 나눠주었다. 그러던 중 가이드는 "몽키킹 이스 컴잉!"이라고 외치고 말로만 듣던 몽키킹이 우리 보트에 올라탔다. 다른 원숭이들에 비해 덩치가 컸던 걸로 기억한다. 왕이라 그런지 가이드가 직접 바나나를 4개를 한 번에 주었고, 킹은 그게 당연한 듯이 쓱 가져가고는 보트 지붕 위로 올라가 고고하게 먹어댔다.
피딩 타임이 끝나고 원숭이들은 자기들이 침공할 때 썼던 늘어진 가지를 통해 섬으로 돌아갔다. 원숭이가 다 나간 줄 알고 가이드는 보트를 이륙시켰는데, 고고하게 먹던 킹이 미처 섬으로 가지 못했다. 킹은 행동이 굼떠보였고, 지붕 위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가진 권력에 비해 능력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킹이 정말로 멍청해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배를 가까이 대서야 겨우 가지에 매달려 섬으로 돌아갔는데, 가이드는 이를 보곤 킹이 늙어서 그렇다고 TMI를 말해주었다.
그렇게 원숭이 투어가 끝나고 나니 보트는 석양이 지고 있는 해변가로 뉘엿뉘엿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