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 봉가완 투어.
코타키나발루 같은 휴양지를 갈 때 꼭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광경이 있다. 바로 선셋과 선라이즈이다.
우리는 항상 일출몰의 반복 속에 살고 있지만, 여행지가 아닌 곳에서 그 여유를 느끼기엔 너무도 바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 일상 속에서 일출몰은 휴양지에서 꼭 봐야 하는 광경이 되었다. 특히 코타키나발루는 선셋이 유명한 관광지이다. 나도 이번 여행을 갈 때 큰 설렘 없이 출발을 했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코타키나발루의 아름다운 선셋이 내 지쳐버린 영혼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어 삶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만한 깨달음을 주기를 내심 기대했었다.
원숭이 섬을 갔다 온 후 시간은 대략 5시 30분. 보트는 해변가에 정박을 했고, 우리는 잠시 내려 넓게 펼쳐진 백사장의 고운 모래를 걸으며, 선셋 전의 파스텔톤의 하늘과 조용히 파도가 밀려오는 풍경을 배경 삼아 친구들이랑 사진을 찍었다. 어디서 찍어도 인생 샷이었다. 하지만 아직 선셋은 오지도 않았다는 것에 더욱더 기대감은 커졌다.
그리고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았는데, 낮동안 충분히 달궈진 해 질 녘의 바닷물은 기분 좋게 따듯했다. 바다가 따스하게 자신의 일부분을 내어준 듯한 그런 포근한 온도였다. 그 따스한 물에 담근 발은 곱디고운 모래가 발바닥에 맞게 움푹 패이며 적당한 지압을 해주고,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숨 쉬는 백사장이 내 발을 맞이하고 있는 듯했다. 지평선 너머엔 거대한 마시멜로풍 구름 산맥이 늘어서 있고, 그 사이엔 민트색과 분홍색 하늘이 틈틈이 스며들어 있다. 그 광경에 종이배처럼 작아 보이는 배들이 멀리 눈에 보이기만 한다.
이 찰랑거리는 바닷물과 마시멜로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고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낮동안 열심히 세상을 비춘 태양이 이제 다른 곳을 비추기 위해 지평선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일몰의 태양은 강렬히 불타올랐지만, 점차 검은 구름과 어두워지는 하늘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오늘 하루가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할 거란 아쉬움이 들었던 것 같다. 새삼 지나가는 하루인데도, 오늘 하루가 더욱 아쉬워지는 이유가 뭘까. 하루의 끝이라는 걸 선셋이라는 형태로 직접 목도해서 그런 것일까. 바다는 오렌지 색의 황금 길이 생기고 그 길 너머엔... 어렴풋한 세월이 손짓하는 듯하다.
이런 일몰을 볼 때마다 항상 현재 이 순간이 소중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도 특별한 하루를 보냈는가라면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날이 대부분이겠지만, 일몰을 본 날은 왠지 특별한 하루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지나간 삶을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게 일몰이 아닐까. 이 지나간 삶이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보인 다는 것은 결국은 과거는 미화되니 현재를 잘 이겨내라는 메시지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석양을 본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 석양을 볼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가이드들은 석양을 배경 삼아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인생에 기념할만한 기록을 남겨주고 있었다. 우리도 가이드의 요청사항에 맞춰 석양 아래서 힘껏 점프하며 사진을 찍어보기도 하고, 찐친 모멘트처럼 포즈를 잡기도 하며, 여행 후 아쉬움을 달래줄 기록을 하나하나 찍어나갔다. 열심히 찍어준 가이드 에드워드에게 감사를 전한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뒤로는 다시 석양을 보기는 힘들어졌지만, 그날 석양에서의 추억은 훗날 술안주나 소소한 추억거리로 오래도록 얘기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