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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루떡 Aug 08. 2022

휴양지의 반딧불 향연.

코타키나발루 봉가완 투어.

 선셋 뒤엔 어둠이 내리깔리고, 곧 남색 대기가 조용히 공기에 휘감긴다. 감동스러운 선셋에서의 추억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다시 보트를 탔다. 가이드는 보트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반딧불들이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사실 반딧불이라는 게 한국에서는 보기가 굉장히 힘들고,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말 그대로 책에서나 접하는 추상적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큰 기대는 안 했던 것 같다. 반딧불이라고 해봤자, 어린 시절의 로망이 성인이 된 뒤로 실은 별거 아니었다는 수많은 사례들로 미루어 본다면 별 볼일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선셋 명소에서 다시 돌아가는 길에 타는 보트는 분위기가 은은했다. 조용히 울리는 새소리와 밤에 활동하는 작은 것들의 조그마한 움직임 소리. 수풀이 저녁 바람에 잎사귀를 건들거리며 내는 소리는 낮의 활기와는 다른 저녁만의 고즈넉함이었다. 낮의 탁류는 흑요석 같은 빛깔을 뛰게 되었고, 보트만이 빛을 가지고 있었다. 



 가이드는 곧 반딧불들을 만나기 전에 몇 가지 당부 사항을 말해주었다.  

모기 스프레이를 반딧불에게 뿌리지 말 것. 반딧불도 모기 같은 느낌이라 잘 죽는다 한다. 
강한 빛을 반딧불에게 쬐지 말 것. 핸드폰 라이트를 최대한 줄여달라 했다. 

영화관 예절과 비슷한 반딧불 투어 예절을 숙지 한 뒤, 난 핸드폰의 밝기를 최저로 줄였고 반딧불을 기다렸다. 


 곧 가이드가 어떤 형광색 빛을 어느 나무에 비추더니, 정말 신기하게 나무가 빛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빛나는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그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들이 천천히 비틀비틀 거리며 우리 보트로 날아들었다. 형광의 미약한 작은 빛들이 가녀리게 날아오는데, 넋 놓을 수밖에 없는 신비한 광경이었다. 별 기대를 안 하던 나는 정말 많은 수의 반딧불이 있는 걸 보고,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던 시니컬함이 순식간에 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반딧불은 곧 우리 보트를 빛내기 시작했고, 가이드는 반딧불을 홱 낚아채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어보라 했다. 나도 내 주변을 떠다니는 아주 작은 빛 하나를 낚아채니, 내 손 안에는 반딧불 한 마리가 몸통 쪽에 빛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손을 잠시 모아 소원 세 가지를 빌었다. 그 찰나의 시간에 내 마음속에 있는 간절함이 잠시 일었던 것 같다. 나는 내 소원을 간직한 반딧불을 놓아주고, 보트를 둘러싸고 있는 반딧불들을 감상을 했다. 


 보트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고, 반딧불들은 가이드가 비추는 형광빛을 보고 흘러오듯이 보트로 들어왔다. 가끔 판타지 세계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저녁은 점점 더 깊어지고 어두워져 반딧불의 빛은 더 선명해져 가고, 강줄기는 더욱 매끄러워졌다. 이 광경을 보니 어렸을 적 에버랜드의 지구마을을 떠올렸다. 부모님 손을 맞잡고 어두운 물줄기를 따라 관람했던 화려한 빛의 향연이 애틋한 추억으로 남았었는데, 반딧불들을 보니 그때 그 분위기가 생각이 났다. 


 수많은 나무엔 반딧불이 빛나고 있었고, 보트는 계속 이동하며 반딧불들을 모으며 계속해서 좋은 추억을 만들고 주고 있었다. 보트에 같이 탄 사람들도 웃고 신기해하고 또 감상에 빠지는 걸 보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것 같았다. 반딧불들은 우리 주위를 날아다니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니, 새까만 어둠에 떠다니는 작은 빛이 정말로 신기했던 나도 잠시 동안은 여행지에서의 복잡함은 집어던지고 어린아이처럼 그저 신기해하고, 재밌어했던 것 같다. 


 반딧불 투어가 끝난 뒤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그저 나이가 들었을 때, 언젠가는 내 자식에게 이런 추억 하나는 남겨주고 싶다는 미래의 다짐을 했던 것 같다. 작은 보트에 의지해 검은 물빛을 가르며 감상하는 빛의 향연을 꼭 보여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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