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 필리피노 마켓.
핸드 크래프트에서 이색 경험을 한 뒤, 마사지를 받기 위해 워터 프런트로 가는 길에는 필리피노 마켓이 위치해 있다. 마침 비가 오는 바람에, 비를 피하는 겸 필리피노 마켓을 경유해서 가자는 의견에 힘이 실어졌고, 우리는 의도치 않은 필리피노 마켓 관광을 하게 되었다.
필리피노 마켓은 비가 옴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거대한 천막들 사이로 오징어등이 형광빛을 내뿜으며, 시장을 밝혀주고 있다. 특유의 빛 때문인지 빗물이 고인 시장바닥에는 하얀빛 그림자가 잡히고, 물이 고일까 염려한 상인들이 천막 끄트머리마다 플라스틱 통을 갖다 놓았다.
필리피노 마켓은 상당히 세련됐다기보다는 날 것 그대로인 느낌이다. 쇼윈도가 전혀 없이 상품과 손님의 간격은 의미가 없다. 손님이 집는 대로 물건이 있고, 어느 진열 방법도 없이 늘어져있는 게 필리피노 마켓만의 진열 방식이다.
필리피노 마켓엔 수많은 열대과일이 있다. 특히 파파야나 두리안, 드래건 후르츠, 파인애플 같은 화려한 열대 과일들이 형형색색 모여져 있다. 마트에서 진열된 과일들은 한번 씻겨서 오는지 깨끗해 보이는 거에 반해, 이곳 시장바닥에 있는 과일들은 나무에서 갓 따온 듯이 자연의 흔적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긴 책상이 많이 보이고 의자가 주르륵 정렬해있는데, 필리피노 시장만의 식당 스타일인 듯했다. 우리나라 전통시장은 골목에 들어가 있어야 맛집이 있는 반면, 필리피노 마켓은 모두 공유된 테이블에서 각자 원하는 음식을 주문해서 먹는 방식인 듯하다. 흡사 백화점 푸드코트와 비슷한 느낌이다.
우리는 에이드에 눈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형광색의 에이드들이 큰 유리통에 달린 음수기에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색감은 비 와서 축축한 날씨에도 혼자 채도가 높은 듯 보였으며, 친구는 슈렉이 갈아 넣은듯한 연두색 에이드를 주문해서 마셨다.
그 에이드의 맛은 메로나보다는 고급스러운 멜론향이었다. 필리핀에서 에이드는 대부분 중박은 치는 모양이다. 우리는 필리피노 마켓을 돌아다니며, 특이하게 생긴 열대어 대가리 전시를 훑어보고, 여러 육류들이 진열되어있는 곳도 지나 보았다.
필리피노 마켓 역시 천막으로 이어진 공간이라 그런지 어둡고 축축한 느낌이 강했고, 그에 반해 느껴지는 시장의 활력과 에이드의 색감, 그리고 열대 과일과 열대어의 향연이 공간을 조금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필리피노 마켓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이 많이 이용하는 듯하다.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은 현지인이었다.
정말로 한국인은 우리밖에 없고, 대부분 현지인인 데다가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스타일이다 보니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듯했다. 비록 스케줄 문제로 더 훑어보지 못하고 지나갔으나, 필리피노 마켓 한켠에 앉아 에이드와 그곳만의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의 활기를 언젠간 제대로 느끼면 어떨까란 아쉬움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