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 여행 마무리.
낯선 이국땅을 밟았던 발걸음은 이제 다시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새벽 동안 하늘을 날아, 아침의 한국으로 돌아오는 '새벽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코타키나발루로 출발할 때 봤던 승객들이 공항 복도 의자에 앉아 조용히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시각 유일한 항공편의 마지막 승객들이었다. 공항 직원들도, 승객들도 모두 조용히 항공기 시간을 기다리는 듯했다.
공항 의자에 자리를 잡고 보조 배터리에 핸드폰을 꼽고는 의외로 많이 남은 로밍 데이터를 소비하는 게 유일한 콘텐츠였다. 여행에 대한 감상이나 후일담은 자연스레 뒤로 미뤄두고, 그때 순간만큼은 별생각 없이 한국의 문물을 다시 접하며, 시간을 때우고만 싶었다. 그러다 간간히 오가는 스몰토크들... 조용한 밤 공항의 분위기였다.
비행기 시간이 되었을 때, 얼탔던 입국 수속과는 달리 출국 수속은 능숙했다. 자연스레 마스크를 벗어 얼굴을 보여주고 두 손가락 지문을 스캐너에 대며 신속하게 통과했다. 비행기에 탔을 때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시간이 한 여름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여길 온 적이 없었나..? 잠시 동안 의문이 들 정도였다.
여행 마지막 날, 내 나름대로 했던 여러 결심들이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감성 어린 생각들이 굳고 성숙해져 여러 결심으로 변했다. 생각을 비우고 싶었던 것과는 달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론까지 도출해낸 괜찮은 여행이었다. 비행기에서 그 다짐들을 거듭 새겼던 것 같다. 설레지 않던 여행의 시작과는 다르게 돌아갈 때는 작은 설렘이 일었다.
비행기가 뜨고, 기내엔 불이 꺼졌다. 새벽 5시간 동안 날아야 하는 비행기는 고요한 밤하늘을 날아야만 한다. 창가 쪽 자리 너머엔 새까만 어둠뿐, 그리고 소금처럼 흩뿌려진 수많은 별들이 계속 펼쳐져있다. 나는 별들 사이에서 잠을 청했다.
여행의 피로가 누적된 덕택인지 비행시간 30분 남았을 때, 기장의 방송을 듣고서야 잠에서 깼다. 창가 너머엔 밤하늘의 별은 이미 사라지고 코타키나발루에서 봤던 에메랄드 바닷빛이 일출과 함께 하늘에 번지고 있었다. 여행의 시작은 선셋이었지만, 끝은 선라이즈로 마무리되었다.
아직 뻐근함이 가지 않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선라이즈를 보며, 여행의 끝보단 또 다른 일상의 시작을 느꼈다. 그리웠던 한국땅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 마음속의 변화가 어렴풋이 밀려들어왔고, 그 의미는 곧 찾을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이번 코타키나발루 여행은 알게 모르게 나를 천천히 변화시킨 멋진 흐름이었던 것 같다. 여행지는 언제나 삶에 새로운 흐름을 새겨 넣는다. 일상과 여행 사이는 서로 대척점에 있어, 같은 듯하면서도 서로 애타게 그리워한다. 일상일 땐 여행을 그리워하고 여행에선 일상을 그리워하게 된다. 여행의 좋은 끝은 일상을 특별하게 보낼 수 있을 자신감이 생겼을 때이다. 여행의 끝에는 새로운 일상이 있고, 배움의 적용이 있다. 이런 일상 끝에 지루함과 부족함을 느끼면 또 떠나야 하겠지.
일상과 여행은 이렇게 서로 반복하면서 우리의 삶을 높은 곳을 향해 조율시키니, 어느 순간 '좋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이번에 천천히 나를 변화시킨 코타키나발루처럼...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로 나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