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 여행 에세이.
일상을 벗어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삶에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면 괜찮을 거란 생각이었다. 밥도 잘 먹고 다니고, 돈도 아직 안 떨어졌고, 일자리는 없지만 언제든지 구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하등 한 류의 자신감이 내 안에 팽배해 있었고, 사람들이 그걸 '자만'이라고 부르는 걸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이런 일상이 지겨워지고 마음속에 아무런 감성이 들어찰 수 없을 만큼 메마른 뒤에야 친구로부터 코타키나발루 여행을 가자는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가 내게 들렸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승낙을 했고, 비행기를 탈 때까지 별 다른 생각 없이 시간 약속과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 신뢰성을 깨트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제시간에 비행기 시간에 맞춰주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무런 설렘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미 가기로 한 거 한번 즐겨보자라는 마인드 셋을 가지려 노력했다. 실제로 비행기가 막 이륙할 때 잠깐의 설렘이 동했으나, 결국 무감함이 다시 나를 덮치고 말았다.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해 여러 체험을 했다. 원숭이 여왕에게 바나나를 주기도 하고, 반딧불에 둘러 쌓여 소원을 빌어보기도 하고, 폭풍우 속을 헤치며 배를 타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에서의 나의 삶을 잊어버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에 애써 잊고 있었던 불안감이 호텔에서 보내는 고요한 밤에 불쑥 찾아오고 말았다. 오히려 익숙한 무기력의 행태 속에 매몰되어 있던 내 삶의 경종이 거대한 종소리처럼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너 이제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않을 거야?'
생각을 비우러 가는 여행지에선 그런 의도와 다르게 아이러니하게도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여러 감정이 교차되기 쉬운 여행지의 밤엔 더욱 고뇌가 깊어지는 듯하다.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해 좀 더 명확한 객관성과 상황 파악이 가능해지는 것 같다.
이것저것 치여 주위를 둘러볼 능력이 사라진 한국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있으면서 어느 정도 멀리 바람 봄과 동시에 다르게 생각해볼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고국에서의 삶을 생각하니 제3 자가 보는듯한 객관성이 생기는 게 느껴졌다. 자기 연애는 제대로 못하면서 남 연애 상담은 잘해주는 사람 같은 원리이다.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져버려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마인드로 약 3달을 살았다. 글에 대해서도, 일에 대해서도, 삶에 대해서도 진심이 아니었던 것 같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운동부족 때문에 체력이 발목을 잡았고, 바뀌어버린 밤낮 때문에 뜬 눈으로 새벽을 보내지만,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할 수 없는 몸상태였다. 하지만 SNS만큼은 놓을 수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도 나는 뭔가 하는 사람처럼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깊은 고뇌 끝에 애들이 자고 있는 시간에 혼자 어디론가 산책을 나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선 하나를 덜어냈다. 정확히 말하면 덧없는 것에 미련을 버렸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다. 나는 SNS를 지우기로 결심했다.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여행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며 잘 사는 것처럼 꾸며대는 건 쉽다. 하지만 내면의 공허함을 극복하는 건 어렵다. 그렇게 갑자기 든 무던한 생각과 함께 호텔룸에 돌아오니, 친구 한 명이 선잠에 깨어 어둠 속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베란다에서 깊은 얘기를 했다. 친구는 그동안 내가 SNS에 올리는 정체불명의 글이 사실 왜 저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고 했으며, 스스로의 가치를 깎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 얘길 들으며 그동안 SNS에 집착하며 살았던 사실을 새삼 체감했다. 나만의 콘셉트로 올리는 우스꽝스러운 그림들과 텍스트들... 그리고 그걸 올리며 다른 사람들이 봐주길 바랬던 비루한 바람들이 덧없이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누구에게 어떻게 보이려 살아왔던 걸까.
그동안 스스로 보이는 곳에서 가짜 행세를 해왔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보여줘야 하니 속 빈 강정 이어도 뭔가가 있어 보여야 했다. 여행 오기 전엔 그런 종류의 기름기가 과다하게 껴있었다. 나를 살찌게 한 게으름과 나태와 겉보기에 치중한 무위의 삶이었다. 특별하지 않은걸 꾸며대고,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댔다.
실은 많은 사람들이 나의 여행사진을 기대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올려댔던 그동안의 여행사진은 그저 남들 기저에 깔린 여행에 대한 부러움을 이끌어내기 위한 자아도취와 동시에 나에 대한 관심 유발이 진정한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SNS를 올려대는 여행과는 다르게 내 일상은 더욱 비교가 되고, 그래서 일상에서도 굳이 특별함을 찾으려고 더 꾸미게 됐던 것 같다.
현재는 모든 SNS를 핸드폰에서 지운 상태다. SNS를 지우니 내가 보이는 곳이 사라졌다. 덕분에 나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보일 필요가 없으니 마음 편히 도전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다른 사람의 조그마한 관심을 받기 위해 다이어트 선언을 올려대고, 운동 사진을 인증하면서 스스로를 타인의 시선에 대한 부담으로 가뒀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더 이상 SNS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했지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제 나만 알고 있으면 되고, 나만 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는 오직 나만이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라 삶을 더욱 정직하게 대하는 효과를 느끼는 중이다.
더 나아가 SNS를 이용하기보단 '활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인스타 샐럽들은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기보단 자신의 가치를 창출하는데 SNS를 활용하고 있었다. 자신의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은근히 숨어있는 끝없는 자기 PR이 그들의 치밀한 계산 아래로 숨겨져 있다. 진정한 인스타그램의 승리자는 그들 아녔을까.
SNS는 자신의 삶을 공유하는 대신, 남의 삶도 공유받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빈부격차와 열등감, 혹은 자신이 도태되고 있다는 불안감, 상대적 박탈감등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엄습하기도 한다. 그러한 감정들이 축적이 될 때 SNS의 생활은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고 자신 역시 뒤처지지 않아 보이려고 자신의 삶을 속이기도 한다. SNS의 순기능을 누리기 위해선 우선 자기 자신에 집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SNS 보단 자기 자신에 먼저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
이번 코타키나발루 여행의 최고의 수확은 단언컨대 SNS를 덜어내고 진짜 삶으로 귀의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