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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의 서재 Jun 04. 2024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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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정의하는 특성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생김새, 이름, 독특한 취향이나 목소리 등등. 날 때부터 가지는 이름을 제외하고서는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개성 같은 것들이다. 그럼 우리가 얻게 되는 이 개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은 여기에 조금이나마 답하고자 노력하는 책이다. 저자는 유전자와 후성유전학에서 그 대답을 찾는다.


저자는 후성유전학을 전구에 비유한다. 유전자 배열을 각기 다른 크기의 전구의 배열이라고 생각해 보자. 전구의 종류나 배열이 사람의 성격, 피부색에 해당된다면, 성장하면서 겪는 환경(태아일 때의 경험, 먹는 것 등)이 전류쯤이 될 것이다. 이 전류(환경)에 의해 전구가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이 후성유전학이다. 후성유전학은 현재도 계속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전적으로 믿기에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실험결과를 참고해 후성유전학의 미래를 지켜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나를 나답게 만드는 어떤 요소가 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장 건강에 관심이 있거나 유산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마이크로 바이옴'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마이크로 바이옴이란, 우리 몸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집합군을 의미한다. 육류를 좋아하는 사람의 장에는 육류를 좋아하는 미생물들이 주로 서식하고, 채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채소를 좋아하는 미생물들이 주로 서식할 것이다. 사람의 식습관, 유전학적 기전, 부모로부터 받은 미생물 등에 따라 각자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문만큼이나 다른 마이크로바이옴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기른 무균생쥐를 통해 마이크로바이옴이 생물에게 끼치는 영향을 알아냈다. 무균환경에서 기른 생쥐는 장 내 환경도 무균이기 때문에 정상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취한다. 극도의 예민한 성격을 가졌으며 조그만 불확실성에도 불안 증세를 보인다. 과학자들이 생쥐의 불안을 미로를 통해 테스트했다. 십자형의 미로를 주고 일부는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를, 일부는 끝이 닫혀있는 통로를 보여준다. 불안이 심한 무균 생쥐는 보통 닫힌 미로를 선택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위험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장내 서식하는 특정 미생물총을 이식한 무균생쥐들은 ‘용감하게' 열려있는 통로를 선택하고 나아갔다. 과학자들은 무균 생쥐를 통해 미생물이 우리의 성격, 행동, 기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인간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치는 재미있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과학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괴팍하고 무뚝뚝하게 변하는 성격도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영향이라고 주장한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노인들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미생물총의 비율이 젊은 사람들보다 현저하게 적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며 먹는 많은 종류의 약들(항생제)들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더 좋은 환경이 더 좋은 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도 가지게 하는 연구결과로 보인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조금 섬뜩한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는 인간으로부터 미리 지령을 받은 정부 기관이 범죄를 일어날 상황을 제압한다. 만약 이런 일들을 유전자로 알 수 있다면 어떨까? 과학자들은 폭력범죄를 일으키는 MAOA라는 유전자의 변이가 폭력성을 유발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MAOA효소는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을 분해할 때 필요한 효소인데, 여기에 변이가 일어나 신경전달물질의 분해가 저하된다. MAOA에 변이가 있는 사람은 충동에 쉽게 휘말리고 쉽게 적개심을 드러낸다.


2014년 스웨덴의 한 연구소에서는 핀란드의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유전연구를 진행했는데, 여기서 MAOA와 함께 CDH13이라는 추가 유전자를 밝혀냈다. 연구진은 이 두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13배 정도 폭력범죄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의 결과만 보면 현대판 <마이너리티 리포트>까지 다 온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이 유전자가 있는 사람을 다 잡아넣으면 우리는 폭력범죄 없는 파라다이스에서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유전자의 발현은 생각보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실제 이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사람이라도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성격의 사람도 있다. 연구진이 밝혀낸 것은 인간이라는 큰 모자이크 조각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인간의 복잡한 행동체계의 원리를 밝히기 위해선 더 많은 연구결과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야기 한 부분을 앞서 비유한 전구에 빗대어 보면 어떤 전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 전구는 어떤 행동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이제 설명할 부분은 이 전구를 가지고 특정 환경에 처하면 어떤 행동(불빛)이 발현되는지에 대한 연구결과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 지역은 몇 년 동안 봉쇄되어 심각한 기근에 시달렸다. 당시 사람들이 먹을 게 없어 식인을 하고 가죽까지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심각한 기근이었다. 당시 기근에 시달린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당뇨, 비만 등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 이는 산모의 환경이 태아에게 앞으로 태어날 환경에 대한 신호를 주었을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기근이 있을 환경에서는 적은 먹이에서 최대한의 영양분을 뽑아내는 유전자가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기근이 사라진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유전자는 오히려 성인병을 유발하기 쉬운 형질인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MAOA 유전자의 사례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MAOA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모두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아동학대를 받은 피해자라면 폭력성향을 가질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한 술이나 마약 같은 약물과 MAOA유전자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이 연구결과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동물인지 짐작가게 하는 부분이다.




과학이나 생물에 대한 책을 보다 보면 인간이 기계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넓은 우주에서 인간이 작고 보잘것없이 느껴져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최재천 교수님의 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냥 궁금해서 읽는 것도 있지만..)

나는 인류애가 부족하기에 과학을 통해 부족한 인류애를 조금 더 키워보려고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은 여기에도 적용되리라 믿으며... 다음엔 어떤 재밌는 책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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