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내면에는 이런 보석이 숨어 있군요!
오늘은 '길 위의 인문학', '동양고전강독-고전으로 사람을 읽다' 세 번째 시간이다. 카플을 해주는 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유있게 도서관에 출근하듯 참석을 했다. 첫 시간은 강의를 듣고 그 다음 대여섯 명씩 모여 주제에 관한 토론을 한다.
쉽게 접할 수 있지만 혼자 이해하기 어려운 <논어>의 키워드를 강의를 통해 배우고 공자가 왜 그토록 '인'을 강조했는지 살짝 느낌이 왔다. 그가 말한 인 속에는 예, 효, 충, 서, 음악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버무러져 있다. 큰 범주 속에 작은 부분이 구성되어 있고 그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공자는 이상적인 사회가 실현될 것을 기대했다. 물론 군주의 외면 속에 한 세상을 떠돌며 답답해 하기도 했겠지만. 흥미로운 것은 공부에 대한 공자의 태도이다.
논어에 '발분망식'이라는 고사가 나온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에게 섭공이 스승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데, 자로가 제대로 답변을 못하여 스승인 공자가 자신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대목이다.
"너는 어찌하여 '그는 발분하여 밥 먹는 것도 잊고, 배움을 즐겨 근심을 잊으며, 늙음이 닥쳐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했느냐!"(발분망식 낙이망우 부지로지장지운이)는 호된 꾸지람 속에 등장하는 '발분망식'. 무언가를 하려는 의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충만하여 배고픔조차 잊어버리는 몰두의 순간을 이르는 말이다.
수업을 들으러 온 열정 어린 선생님(도서관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동지를 이렇게 부르려고 한다.)들을 우선 존경의 눈길로 스윽 쳐다보며 저들이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내심 궁금해했다. 토론이 시작되고 이런저런 일상의 일들을 주고받는 선생님들을 보다 오지랖이 발동하여 결국 내가 토론을 진행하는 모양이 되었다.
"발분망식할 정도로 무언가에 빠져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나의 질문에 나이를 먹고 체력이 떨어져 그럴 기회가 적다는 하소연들이 쏟아진다. "그럼 지금은 아니라도 자신을 들뜨게 하고 설레게 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연이어 묻는 나의 질문에 하나 둘 마음 속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는 작년에 버킷리스트 3개를 달성했어요."라고 운을 떼는 어느 선생님은 10kg을 감량하여 스페인의 어느 순례길을 걸으셨다고 한다. 깜짝 놀랐다. 그 분은 처음 자기 소개를 할 때 약간 감정에 북받치는 모습으로 이제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의연하게 이야기하던 분이었기에. 10kg을 거의 굶다시피(건강상 효능은 뒤로 미루고) 뺀 것도 대단한데 혼자서 스페인으로 여행을 갔다는 사실에 그분이 거인처럼 느껴졌다.
"너무 대단하세요! 거기를 혼자서 가셨다구요?"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화장기 전혀 없는, 수수한 모습의 어느 선생님은 자신도 여행을 좋아한다며 60일 인도 여행을 비롯하여 이것저것 잔잔하게 풀어놓기 시작하셨다. 마침 사는 동네도 비슷하여 도서관을 나와 집에 올 때까지 같은 버스를 타고 환승하는 내내 그분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첫인상과 전혀 다른 삶들을 살고 계신 이로부터 나는 한방 얻어맞은 것 같았다. 스스럼없이 나의 질문에도 편하게 답하시면서 결혼 생활, 부부 관계 등 소소한 팁도 일러 주신다. 그분들을 보니 생각만 많고 실천력이 떨어지는 내가 너무 우물 안 개구리 모양인양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토론이 재미없다고 쉽게 말하던 지난 날의 내 모습이 생각나 그분들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인문학은 사람을 배우는 학문이다. 배우려면 우선 상대를 알아야 한다. 상대를 알려면 그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상처가 있는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봐야 한다. 그냥 겉으로만 봤을 때 알 수 없었던 진면목이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내게는 묻혀진 보석처럼 다가왔다. 질문 하나가 그들 안에 숨겨진 보물을 캐내기 시작하고 그들을 반짝거리게 만드는 진솔한 답변을 이끌어낸 역할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인생 선배로서 충고하고 격려하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갑자기 삶 가운데 언니가 왕창 많아진 기분이랄까?
그래서 지금 점심도 미루고 이렇게 집에 오자마자 글을 쓴다. 그들 속으로 기꺼이, 과감히 뛰어드는 삶이 인문학의 과정이다. 선을 미리 긋지 않고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의문을 품고 속이야기를 듣고 이해해가는 모든 과정이 인문학인 것이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20강을 무사히 갈 수 있으리라 감히 기대해본다. 나도 많이 성장하기를! 편견과 오만이 아닌, 겸손과 용감함으로 거뜬히 목적지에 다다르는 과정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