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근본, '서(恕)'에 대하여

역지사지의 정신

by 윤작가

장마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제법 덥다. 여름이니까. 당연한 거다. 그런데도 덥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헉헉거리고 어쩌나 싶다. 어제 저녁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는 바람에 오랜만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눈 내리는 어느 겨울-내가 사는 지역은 눈을 못볼 때가 더 많으니- 버스 앞에서 꽈당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고 한쪽 부분이 욱신거린다. 뼈는 이상없다는 자체 진단 아래 손으로 몇 번 마사지를 해주고는 시간이 지나길 기다린다. 그 핑계 삼아 수업에 빠질까 잠시 고민했지만 다시 마음을 바꿔 도서관에 갔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한 마디로 평생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라는 자공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한 말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공감이 되어 가슴에 새기고픈 문구이다. 이 자체를 공자는 '서(恕)'라고 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 인문학의 근본이 되는 마음이다. 오늘 길 위의 인문학 '동양고전강독'에서 배운 내용이다.

한 시간은 작가님의 강의를 듣고 4개 정도로 조를 나눠 토론을 한다. 오늘 토론은 '주이불비(周而不比)'와 '화이부동(和而不同)'에 대해 나누는 거였다. '주이불비(周而不比)'란 여러 사람과 두루 친하면서 서로 견주지 않는 것을 말하고,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서로 화합하면서도 같아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자기 의견만 내세우지 않고 나와 다른 이들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지향하라는 거다.


이상주의자였던 공자는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들에게 이런 태도를 강조했는데 '어느 왕이 이런 사상을 좋아했을까' 싶다.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최고 우두머리가 뭐가 아쉬워서 굳이 남의 입장을 헤아리겠는가? 그러나 다른 나라의 군주와 끊임없이 대결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인정하고 화합할 필요성이 커진다. 자신의 삶에, 현실에 어떻게 적용시키느냐에 따라 이 정신은 얼마든지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어느 요리연구가가 설탕 대용으로 스테비아라는 물질을 사용했다. 고혈압과 충치 예방에 좋다고 소개되길래 호기심이 작동하여 나도 인터넷에서 그 제품을 주문했다. 그런데 월요일 발송된 제품이 오늘까지 도착하지 않고 있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해당 택배노조가 파업을 하여 물량 이동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평소 같으면 이게 무슨 일이냐며 흥분하여 바로 본사에 전화를 걸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번에는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다. 해당 택배사의 우리 동네 택배 기사는 예정된 시각보다 빨리 배송을 해주는 편이었으므로 이번 일만 가지고 따지기가 미안해서이다.


택배를 보낸 업체에서 친절하게 발송 문자까지 보내주어 쓴소리를 하기가 망설여진 것도 있다. 이러다 택배를 영영 못 받는거 아닌가 싶어 답장을 보냈다. "소중한 물품 기대하고 있어요. 그런데 택배노조의 파업으로 아직 택배물이 도착하지 않았어요."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고운 법. "내일까지 기다려보시겠어요? 안 되면 다른 택배사로 다시 보내드릴게요." 이것도 운명이려니 느긋하게 마음 먹는다. 대기업에 위탁된, 택배 기사들의 처우가 개선되길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문제가 신속하게 해결되길 기다리고 있다.


"많이 좋아졌다!"라고 한 마디 하시는 어머니. 참을성이 부족하여 불만 사항이 생기면 이러쿵저러쿵 늘어놓기 바쁘던 내가 이만큼 인내하고 상대방의 입장까지 고려하는 것을 기특하게 여기신다. 오늘까지는 평안한데 내일은 마음에 어떤 폭풍우가 몰아칠지 알 수 없다. 그게 인생이다. 참고로 스테비아는 고혈압에는 좋지만 저혈압과 신장 질환이 있는 이들에게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숲보다 나무만 보고 덤벼드는 내가 또 한 번의 교훈을 얻는다.


동양고전강독 첫 시간, 각자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할 때, 작년에 출간한 공동 문집 이야기를 꺼냈더니 관심있게 들은 선생님들이 계셨다. "조금 더 재미있는 토론을 위해 오늘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글로 적어와서 발표하면 좋겠어요."라고 하신다. 다같이 시도하기에는 부담스러워하는 분이 많으실 거라고 했는데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자극받아 이렇게 글을 적고 있다. 이래서 친구가 좋은가 보다. "선생님, 약속지켰어요, 이렇게요!"


"앎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방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 문장을 실천하기 위해 오늘 들은 내용을 글로 적고 있다. 남은 강의도 방향을 잃지 않도록 갈래를 잡아가야지. 덥지만, 누군가의 말이 도전이 되는 보람찬 시간. 나의 공부는 오늘도 계속된다!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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