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만난 길 위의 인연들
오늘은 작년 '길 위의 인문학'(도서관 글쓰기 강좌)에서 만난 이들과 '글친'이라는 글쓰기 동아리를 만들어 모임을 갖는 날이다. 추석과 태풍으로 몇 주 못 만난 인연들이 도서관에서 다시 모였다. 나는 이 동아리의 총무를 맡고 있어 모임이 있는 날이면 음료수를 준비하고 미리 프린트해 놓은 작가님들의 원고를 챙겨간다. 다들 인생 선배시라 막내라고 예뻐해 주시면서 격려의 말씀도 자주 해주신다. 때로는 모자란 성정에 혼자 끙끙대기도 하지만 다녀오는 길은 마음이 풍성해지고 글을 쓰고 싶게끔 만들어주는 귀한 인연들이다.
한 달에 두 번 정기 모임을 갖는데 각자의 사정으로 결석을 해도 그러려니 트집잡지 않는다. 처음에는 전문가도 없이 우리끼리 하는 피드백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비단 글쓰기를 뛰어넘는 인생철학을 맛보게 된다.
"내년에도 할 수 있을까요?"
올해로 모임을 마무리할까 하는 마음을 어머니께 은근히 내비쳤다. 말없이 듣고 계시던 어머니가 "글쎄다."라고 응답하신다. 솔직히 어느 때는 귀찮기도 하고 총무가 크게 힘든 일은 아니지만 책임을 맡고 프린트며 음료수 준비하는 일이 버겁게 다가올 때도 있다. 몸 상태가 안 좋거나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할 때는 은근히 손을 떼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내 장점 중 하나가 성실성-대체로 주변인들의 평가에 따라-이라면 그렇기에 총무를 맡은 책임감으로 알람 소리에 깨어 힘겹게 준비를 하다가 오늘은 지각을 했지만, 편의점에서 구입해 간 음료수를 보고 "아, 이거 맛있다!"라고 긍정적인 추임새를 불어넣어 주시는 작가님들을 뵈니 한결 마음이 가볍고 큰 일을 해낸 것처럼 보람차다. 역시 기분 탓이었나.
기행문을 쓰기 위해-사실 기억은 안 나지만 본인은 써오겠다고 하신 모양- 가이드의 설명을 놓칠 세라 캐나다 여행 중 틈틈이 메모하여 오늘 과자 선물과 함께 글을 준비해 오신 작가님. 여름 내내 직접 농사지은, 색깔이 예술인 자색 고구마를 아낌없이 한 바구니 가져오신 작가님.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다운 이웃이고 서로 성장해 가기를 기원하는 동료이며 인생의 즐거움과 고민도 밥상머리에서 슬며시 풀어놓을 줄 아는 인문학도들이다.
'역시 나는 모자라. 이 분들에게 배울 게 얼마나 많은데.' 돌아오는 길 위에서 반성하며 책상 앞에 앉았다. 정년퇴직 후 쉬지 않고 텃밭을 가꾸고 여러 공모전에 도전하며 점심을 사주면서까지 조언을 구하는 겸손한 작가님. 그분들 앞에 속 좁고 이기적인 나의 마음이 쉬이 드러날까 조심스럽고 앞으로 더욱 잘 하자 싶은 다짐을 저절로 하게 된다.
"총무님, 고생 많아요. 이 과자 챙겨가요."라는 정겨운 인사와 프린트해 오는 수고가 크다며 작은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분들.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그동안 내 인생은 어떠했나 자꾸 돌아보게 된다. 주최 측은 어디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에너지 공모전에 낼 어느 작가님의 원고에서 '탄소포인트제'라는 것을 처음 접했다. 집으로 오자마자 인센티브(성과급)를 받고 싶은 욕심에 회원가입을 하고 전기세를 어떻게 줄일까 작동하는 두뇌. 이럴 때는 동작이 참 빠르게 돌아간다. 상금이 30만 원이라고, 회원들의 조언을 간절히 구하며 미리 돌솥비빔밥을 사주시는 작가님께 어떤 피드백을 드려야 도움이 될지 고민스럽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데, 섣부른 조언에 도움은커녕 원래 글을 쓴 의도가 옅어질까 두렵다. 직접 녹색생활 실천을 위해 '아파트 미니 태양광'설치, 텀블러 챙겨 다니기, 형광등을 LED로 교체하기, 대기 전력 낭비하지 않기 등 에너지 절약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실천하는 그분의 정성이 대단하여 작은 것부터 동참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란 길 위에서 누군가의 영향을 받고 알게 모르게 살아간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진 것만 고집하며 살다 보면 어느새 주변이 텅 비고 외로워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정다운 눈빛, 누군가와 같이 먹으려고 자신의 것을 내놓는 용기. 돈 안 드는 친절은 베풀면 베풀수록 더욱 커져서 우리에게 돌아오는 선물이 될 것이다. 주변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손길은 없는지 한 번쯤 되돌아볼 줄 아는 여유과 마음을 지녔다면 그 인생은 행복하리라. 줄 것이 없다고 슬퍼하지 말고 누군가의 말에 귀담아듣고 웃어주는 작은 실천부터 해보는 건 어떨까? 그런 연습도 자신을 위한 인센티브(성과급)를 쌓는 일이 될 것이다. 나 또한 평소 무뚝뚝한 태도와 표정 없는 인상부터 바꾸는 노력부터 해야겠다, 주름 방지도 할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