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각자의 스펙트럼대로 인식될지라도...
우리는 드디어 오디세우스처럼 기나긴 여행을 끝내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열 명의 수강생들의 글이 실린 문집이 나온 것이다. 11월 8일, 도서관에서 출간기념회를 가졌다. 내 생애 첫 책이라니, 꿈만 같던 일이 드디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1층 회의실 앞으로 각자의 프로필이 담긴 액자가 나란히 서 있고 지도해주신 선생님과 도서관 측의 배려로
각자의 이름이 담긴 책상 위에 예쁜 책이 하나씩 놓여있었다. 정갈한 다과와 함께 누군가의 수고가 깃들여 있다.
보기만 해도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이 더해지는 순간이다. 6월부터 20주간 계속된, 긴 여정 속에서 줄기차게 서로의 고민을 듣고 함께 웃고 격려하며 이 길까지 왔다.
그동안 도서관에서 작가님과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내 글이 어느 정도까지 완성될 수 있을까?' 스스로 자괴감과 의문을 지니면서도 끝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왔고, 총무인 나는 단 한번의 결석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수치스러워 자신의 글을 공개할 수 없다.'는 수강생부터 '자신은 다음 기회를 활용하겠다.'며 넌지시 발을 빼려한 수강생, '내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네.'라는 고민으로 가슴을 쥐어짠 나까지. 하나같이 쓰기에 대한 열망과 망설임, 책에 대한 기대와 두근거림으로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기까지 두 계절을 지나온 터다.
도서관측에서 준비해준 금색 가위와 흰 장갑을 건네받고 오색 끈 커팅식을 하고 노래 교실에서 노래를 배우는 수강생과 바이올리니스트인 수강생의 축하 공연도 이어졌다. 한 명씩 나와 탁자에 앉아 우리들의 책에 각자의 사인을 남기며 기념 사진도 찍었다. 안타깝게도 눈 시술을 받은 수강생 한 명이 빠진 채로 우리들 아홉 명은 각자의 책을 한아름 안고 식당으로 향했다.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나체로 만인 앞에 선 것과 다름없다.'라던 이외수 작가의 말처럼 정말 그러하다. 특히 '라이프텔링, 삶을 쓰다'는 자신의 삶과 내면이 그대로 드러난 에세이집이기에 사생활이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꽁꽁 숨겨둘 수도 있는 부모님과 자녀, 남편, 퇴직 후 삶의 모습, 일하면서 느끼는 일상들이 이 책에 그대로 녹아있다. 수강생 대표로 자신이 썼던 글을 읽어가던 어느 수강생의 글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평소 군에 간 아들을 향한 애틋한 말씀을 많이 하신 분이다. 그 아들이 입대 전, 교내 성추행으로 문제가 불거졌던 교수의 일을 학생 대표로 마무리짓기 위해 간부로서 중간 역할을 하던 중 마음을 심하게 다친 모양이다. 그런 사연이 있는 줄도 모르고 조금은 '자식 사랑이 남다른 분이겠지.' 쉽게만 짐작했던 그동안의 추측들이 무참히 깨어졌다. '아, 그래서 그토록 아들을 걱정하셨구나!'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된다.
우리는 같은 책을 읽어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주제를 바탕으로 글을 써도 자신만의 스펙트럼으로 인식하고 판단하고 받아들인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내부를, 때로는 치부까지 면밀히 보는 일이기에 '쓴다'는 행위가 쉬운 일은 아니다. 용기가 있어야 하고 다른 이들의 시선까지 감내하겠다는 다부진 의지가 필요하다. 시간을 내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시간을 정해놓고 삶을 쓰는 글이어야 진솔해진다.
한 명당 15권의 책을 각자의 집으로 담아갔다. 미혼이라 출산의 경험이 아직 없지만, 책이 '내 새끼' 마냥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 그지없다. 팔불출 부모와 다를 바 없는 모양이다. 형광펜으로 밑줄 좍좍 그으며 다른 수강생들의 삶이 녹아든 글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런 생각을 하셨구나. 이런 인생을 사셨구나.' 모두가 너무 귀하고 대단하고 놀랍다! 그리고 그들의 글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그래, 겉으로 내색하지 않던 그들의 치열한 고민과 깨달음이 이렇게 깊고 커서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구나 느낀다.
"선생님,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안 나오네요.
책 사서 샘 사인도 받고 그럴려고 했는데......."
카톡 사진을 보고 학부모님 한 분이 연락을 주셨다.
"하하, 길 위의 인문학 도서관 공모 사업이라
판매하지 않아요. 사인해서 선물로 드릴게요!"
들뜬 나만큼이나 엄마의 위상도 커졌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나긋나긋하다. "내 새끼 잘 키웠네!" 하신다. "언제는 잘 못 키우셨어요?" 장난스레 대답하며 엄마가 좋아하시니 덩달아 흐뭇한 마음도 점점 커져간다.
비록 개인 출판 기념회는 아니지만 함께 걷고 얼굴 보며 선의의 경쟁을 하는 모든 글쓰기 친구들에게 감사와 화이팅을 전한다. "이제 시작이예요. 아시죠?" 집으로 돌아간 오디세우스의 마음 속에 벌써 바다가 아른거릴 것이다. 이 길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더 부지런히, 겸허하게 정진하기로 다짐하며 오늘은 스스로에게 박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