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사람들
길 위의 인문학 '라이프 텔링, 삶을 쓰다'가 시작된지 12번째 시간. 얼마 전에 새로 산, 약간은 화려한
늘어진 귀걸이를 하고 집을 나선다. 환승을 하는 중간 정류소에서 지인이 추천해준 노래를 들으며
왠지 감상에 젖는다.
날씨가 많이 시원해져서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피어있는 코스모스와 나팔꽃, 운동장에서
떠드는 청소년들을 지나쳐 도서관에 들어서니, "선생님!" 하고 갑자기 나타난 글쓰기 선생님이 방긋 웃으신다. 팔동작이 크고 환한 미소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우리에게 에너지를 심어주고자 하는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 같이 올라가요!"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는 더 예쁜 선생님과 계단을 몇 층 오르고 글쓰기 수업이 시작된다.
처음 인원과 달리 지금 모이는 인원은 10명 남짓. 선생님은 도서관측과 협의한 결과 공동 문집을 내기로 하셨단다. 그래서 이번 달까지 각자 네 꼭지 정도씩 써내야 10월중으로 제작에 들어가고 우리가 수업을 마칠 때쯤에는 꿈에도 그리던(?) 소중한 책이 나올 예정이다. 물론 대량으로 찍어내고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은 아니지만 국립도서관에 등록되는 영광을 안고 글쓰기 동무들의 흔적이 배어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 제가 쓴 글이 너무 수치스럽구요..."
개인 사업을 하시는 어느 분이 자신이 쓴 글이 남들과 비교되어 너무 부끄럽고 자식들에게 내놓기도 걱정된다고 했다.
"여기 계신 분 모두가 그러세요. '글을 쓰는 삶'이 아니라 '삶을 쓰는 글'이라서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그러자 다른 분이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저는 지금껏 글을 써놓은 게 없는데 이번에는 글을 안 내기로 했어요."
순간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으리라. 그 심정을 왜 모르겠는가. 우리는 아직 전문 작가나 전업 작가가 아니고 글을 어떻게 쓰는지 배우러 온 학생 아닌 학생들이다. 퇴직을 하고 평생교육원이나 관련 기관에서 여러 가지 수업을 듣는 사람부터 일반 가정 주부, 학원 강사 등 여러 사람이 이 곳에 모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더욱 더 궁금하고 더구나 다들 어떤 글을 썼을지 빨리 읽고 싶다.
내 글이야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을 알기 위해, 내면을 들여다 보려면 그 사람의 글을 봐야 하니까. 그래서 더 용기를 주고 싶고 같은 처지에 있는 나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글을 모아 좋은 문집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리고 자신의 글이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는 이, 도저히 지금은 자신이 없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귀해 보인다.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를 일으키고 세우는 것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나는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고 솔직하고 자기스러운 글을 써서 각자의 손바닥에 우리 책을 받아들고 다같이 환하게웃고 싶은 거다.
"여러분의 글은 여러분이 가장 잘 쓸 수 있어요."
늘 강조하시는 사랑스러운 선생님.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더욱 꿈틀거리기로 결심한다. 앞서 수업해주신 선생님의 가르침도 적용하여 쓰고 고치고 낙심하고 또 읽고 쓰고 생각하고... 그러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나가겠지.
'길 위의 인문학'이지 않은가. 그 표어가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책상 앞 인문학'이 아니고 '관료주의 인문학'이 아니고 '머리 아픈 인문학'은 더더욱 아니다. 길 위의, 내가 살아가고 걸어가는 인생 길 위에 내가 쓰는 인문학.
"자자, 걱정 따위는 잠시 등 뒤로 집어 던지고 그냥 해봐요! 밑져야 본전이죠,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