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갯짓에 닿는 그 바람을 사랑하는가?
한동안 계속되는 폭염에 우리 집에서는 친환경주의자인 내가 에어컨 구매를 절실히 원하는 처지까지 왔다. 그동안은 집안의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고 맞바람을 맞아들였다. 아래 위층이 열을 흡수하여 그 사이에 끼인 우리 집은 그나마 시원하다고 위안하면서. 선풍기 두 대로 거뜬히 지내던 여름이건만 올해는 어찌 된 탓인지 육체가 더위를 견뎌낼 더 이상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 건 것 같다.
류시화 시인의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니글'이라는 남자 이야기가 나온다. 원문은 <<반지의 제왕>>의 저자 J. R. R. 톨킨이 지은 우화 <니글의 잎새>에 나오는 내용이란다.
'니글'은 사람들이 그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조차 잘 알지 못하는 평범한 화가다. 그림을 그리려면 이런저런 일들이 생겨 시간을 빼앗긴다. 생계를 위한 일에다 주변 사람들의 자잘한 부탁까지 들어주고 나면 힘이 빠져 막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지쳐서 쉬어야 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고 시간을 낭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내가 바로 그인 셈이다. 카프카는 글을 쓰기 위해 2시 반에 퇴근해서 낮잠을 서너 시간 잔 후 저녁을 먹고 새벽까지 꼬박 앉아서 글을 적었다는데, 매일 일정한 시간을 확보해서 습작을 하기는커녕 덥다고 에어컨 타령이나 해대며 어영부영 시간만 죽이고 있으니 영락없는 '니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일, '길 위의 인문학' 수업이 있어 도서관을 가야 하는데 지난 시간에 적었던 원고 하나만 겨우 수정한 채, 새 글은 적지도 않았다. 그게 다 게으름 때문이고 중요하지도 않은 앱 검색에 충동구매에 시간을 날린 탓이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이지.
자기 전 류시화 시인의 책을 읽다 마음에 닿는 문장을 발견했다.
"새는 날갯짓에 닿는 그 바람을 좋아한다."
자유를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자유라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자유를 위해 적는 것이 아니라, 적는 것 자체가 자유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상태를 분석하고 환경을 불평하기 전에 이 모든 과정을 자유롭게 즐기고 있느냐, 질문해 본다.
신은 마음속에 이미 소망을 심으셨고 그 소망을 이루어 원하는 것을 얻고 싶다. 사소한 일에 정신을 놓쳐 정작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을 놓쳐 버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잠들기 전 이 글을 쓰며 일주일 동안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저께 세찬 비가 쏟아진 뒤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한정된 시간, 선물로 주어진 인생을 조금 더 뜻있게 써야겠다. 더 이상은 '니글'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