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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는 희망을 싣고

가장과 맏이라는 동질성으로

by 윤작가 Mar 28. 2025
선물 받은 체리를 식초물에 담가 정성껏 씻다

자신은 시각장애인을 아내로 두고 시각장애인 목회자들을 위한 촉각 성경 지도와 성지 순례, 그분들이 읽을 도서 지원 등. 빈틈없이 전국을 오가며 바삐 움직이는 사역자가 체리를 보내셨다. 항공 체리 1kg.

평소 체리는 비싸서 쉽게 사 먹을 수 없는 과일이다. 일부러 건강관리를 하는 벗에게 체질에 맞는 과일로 신경 써서 보낸 것이기에 감사한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가족들이 이토록 체리를 좋아했던가. 정작 선물 받은 이보다 식구들이 체리를 반기며 맛있게 맛본다.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 정성껏 씻은 과일을 맛만 보고 많은 양을 양보했다. 이럴 때라도 실컷 맛보라고...


응용력을 발휘하여 체리를 잘라 국물김치에 활용한 어머니

어머니는 콩나물을 자주 사는데, 큰 딸이 자궁근종으로 뿌리채소나 콩나물도 맞지 않으니 요리하는 즐거움이 크게 줄었을 것이다. 다른 식구들은 나만큼 채식을 선호하지 않아 새 반찬 외에 기존에 있던 반찬은 손도 잘 대지 않는다.

시금치나물은 쉬기 전에 어머니와 맏이가 해치워야 하고, 이제 콩나물은 예전만큼 즐겨 사지 않으신다. 동생은 언니를 위해 텃밭 대신 커다란 상자 안에 상추 모종을 한가득 심었다. 육류를 즐기는 조카들도 이모는 더 이상 고기를 먹을 수 없다고 이모 앞에서 고기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자제한다.

아무 생각 없이 먹어왔던 음식을, 식재료를, 군것질거리를 이제는 의식적으로 금한다. 의지를 가지고 병을 고치기 위해 애쓴다.


지금 우리나라는 역대 최악의 산불로 신음하고 있다. 축제가 취소되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이 수없이 많다. 손꼽아 기다리는 비는 조금 내렸다가 그쳤다. 불을 끄기 위해 온몸을 바쳐 애쓰는 분들. 탈진하여 도로 위에 그냥 누워있는 이들. 이런 상황에도 나는 살겠다고 체질에 맞게 음식을 가려 먹는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모르겠다. 미리 예매한 표가, 취소된 일정으로 생긴 여행사의 손해. 이런 비극 앞에서도 일상을 유지해야 하는 많은 국민들. 아픈 마음을 토로할 힘도 없을 사람들...


모르겠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지금 바라는 것은 체리에 희망이라는 향기를 씌워 선물해 주신 분의 마음처럼 삶이 무너진 이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나길 바라는 것이다. 또한 일상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삶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되, 작은 체리알 같은 온기를 더해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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