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kim Jan 02. 2021

코로나에도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

독일에서의 일상

독일에서는 코로나의 기세가 10월쯤부터 다시 거세지고 있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꼼짝없이 집에 틀혀박혀 지내야겠구나, 생각하고 넷플릭스 리스트를 만들고 있던 11월 말 S가 나를 크리스마스에 초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록다운 규정이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고, 가게들도 모두 문을 열었기 때문에 S와 S의 가족들 모두의 선물을 미리 사둘 수 있었다. 그런데 12월이 넘어가자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 수가 높아졌고 록다운 규정도 심화되었다.


"나 가도 돼? 갈 수 있는 거야?" S에게 두 번은 더 물어봤지만 S는 끄떡없이 오란다. 나는 '가족'으로 쳐도 되니(응?) 와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현지인이 문제없다니 나도 그냥 대책 없이 믿고 가기로 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기차역에 경찰이 돌아다니며 검사한다는 이야기가 뒤숭숭하게 돌아다니긴 했지만 일단 계획한 만큼 나도, 친구도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강아지 두 마리와 선물이 가득 든 캐리어를 끌고 여섯 시간짜리 직항 기차를 탔다. 기차에는 사람이 평소의 1/2 수준으로 타고 있던 것 같다. 아주 한산한 건 아니었지만 크리스마스 휴가철 같은 느낌도 없었고 덕분에 강아지들과 나는 아주 편안하게 기차여행을 할 수 있었다. 


D시 중앙역에 내려 친구를 만나 집으로 가는 길에 어떤 경찰도 만나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역시. 괜한 걱정을 독일에서 했군 그래 허허. 



친구의 부모님과 차를 마시고 난 후 크리스마스 데코를 구경하러 마실을 나왔는데 크리스마스도 안되었는데 벌써 대부분 철거된 상태였다. 아마도 사람들이 무더기로 구경 나올까 봐 그랬겠지. 타지인이 본다면 이번 독일의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없고, 길에 사람도 없고 조금은 썰렁하고 추운 계절일 수 있겠다. 



도착한 다음날 점심, 가족들과 랑고스(헝가리 음식)를 사 먹으러 나왔는데 정말 거리가 텅텅 비었다. 문을 연 곳은 빵집과 슈퍼마켓뿐이었다. 가족 없는 사람들은 이곳에서의 크리스마스를 견디기 서럽겠구나.. 싶었다. 


Lebkuchen, Mohnkuchen, Dresdner Stollen...
24일 점심 식사


그렇지만 집에는 맛있는 케이크와 간식,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 따뜻한 와인(Glühwein)도 있다. 모든 가족은 23일에 모였지만 나는 22일 저녁에 도착해 S 부모님의 집을 하루 더 누릴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미 3년 전에 내가 정말 힘들었던 그때 날 따뜻하게 품어주고 치유해주었던 그 도시와 집, 가족에 돌아온 기분은 크리스마스에 마침내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가족들이 모이고 시끌벅적 새벽이 다될 때까지 우린 이야기꽃을 피웠다. 코로나 때문에 내가 기대하던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아니었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도 따뜻함은 더 컸으면 컸지 적지 않았다.


S의 집 - S의 남편이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장식
24일 저녁식사- 라클렛

독일에서는 12월 24일 (der Heiliger Abend) 이 크리스마스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그날 저녁 가족끼리 가장 큰 식사를 하고, 선물을 교환한다. 난 친구의 가족들을 잘 알지 못했지만 초대된 사람도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 가는 것이 매너라고 들어서 고민하면서 준비했는데, 다행히 아주 적절한 선물이었다. 알지 못한다고 선물도 준비하지 않는다면 나만 뻘쭘한 상황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가족들마다 각자의 크리스마스 전통 요리가 있을 텐데, 우리는 이번에 라클렛을 해 먹었다. 라클렛은 스위스 요리로 많은 사람들이 쉽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아주 맛있는 메뉴이다. 각자 작은 팬에 원하는 채소, 고기, 해산물을 놓고 그 위에 치즈를 올려 불판 아래 녹여 익히는 요리이다. 독일에서는 라클렛 기계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조금 더 비쌌던 것 같다. 


진짜 나무
많이 먹고 쉬는 시간


독일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를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구한다. 왜냐하면 진짜 나무를 쓰기 때문이다. 진짜 나무를 잘라 집 안에 두고 장식을 한 후에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집 앞에 버리면 된다. 그러면 시에서 마을을 돌면서 트리를 수거해 간다. 


독일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무얼 할까? 아마 가족들마다 모두 다르지 않을까. S의 가족들은 먹고, 이야기하고, 걷고, 게임하는 시간으로 3일을 보냈다. 그동안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오랜만에 새로운 이야기도 했지만 크리스마스는 모두를 행복하게 했다. 


독일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에 기분 나쁜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하는 S의 말도 그렇고, 한 달 내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 그 기다림과 환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들만의 행복, 전통, 기억이 쌓여있다. 아마 그것이 다른 휴일과는 다른 점일까. 코로나로 많은 것이 제한되었고 금지되었지만 크리스마스만큼은 허용된 행복이었다. 조심해야겠지만, 가족들이 만날 수 있게 정부는 규제도 풀었고, 감사하게도 나는 친구의 가족에 포함되어 따뜻함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너무 많이 먹고 쉬어서 집에 가는 길에서 두 볼과 맘이 빵빵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라진 건 없지만, 마음이 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