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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May 07. 2022

병원에 다녀온 날

지난 3월 말 작성한 글을 저장만 해두고 발행하지 않았더라고요. 이야기를 조금 추가해서 올려봅니다. 그동안 너무 휴식이 길었죠. 두 달 동안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푹 쉬기만 했습니다. 저의 결혼식도 있었고요. 시간이 있어도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도 없는가 봐요. 글이 안 써지더라고요. 물론 결혼식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지만 언제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 중이랍니다. 다시 독일에 돌아왔기 때문에 독일 이야기나 할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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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에 방문했고 정기검사도 받았다. 8개월 만에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지낸 게 아닐까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그동안 너무 아무거나 먹은 것 아닐까. 운동을 너무 적게 한 것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이 들었다. 


너무 싫은 조영제를 포함한  MRI 검사는 무사히 끝났고 담당 선생님을 만나러 병원에 방문하던 날은 마음을 굳게 먹고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며 너무 실망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이미 경험해봤는데, 또 뭐가 더 나쁜 일이 있겠어.라는 생각이 한편으로 있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스스로를 건강한 사람으로 여기며 지내와서인지 선생님이 안 좋은 소식을 전한다면 또다시 무너질까 두려웠었나 보다.


일 년 반만의 병원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추적관찰을 미뤄온 건 처음이라 정말 떨리는 마음이 있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과 겉모습은 똑같았으니 정말 아픈걸 깜빡 잊고 지냈는데.. 무슨 이야기를 들을까? 외래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내 앞에 들어간 분들이 한참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나도 초진일 때는 이렇게 오래 걸렸는데.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중년 부부가 선생님 방에서 나왔고 두 분의 얼굴에서 충격과 슬픔의 표정이 비췄다. 내가 들어갈 차례였다. 


다행히 선생님은 사진으로는 병변 부위가 좋아 보인다고 하셨다. 다만 영상학과 선생님들은 아직도 내 머릿속 그것을 주의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하셨다. 사진으로만으론 판단하긴 이르지만, 아직까지 살아있으니 아주 나쁜 성격을 가진 종양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계속 지켜보자. 이렇게 결론을 내주셨다. 


병원에 갈 일이 없다면 내가 아프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지낼 것 같다. 처음 뇌종양을 진단받았을 때 가졌던 삶에 대한 절실함, 간절함, 그리고 감사함을 잊고 시간을 허투루 쓰면서 안일하게 사는 나를 보면서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땐 정말 일 년을 더 살 수 있다는 게 기적 같았고, 10년을 더 살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바뀐 것이 없어도 아무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건강하다고 믿어버리고 시간을 당연하게 여겨버리게 되었다니. 


그렇지만 이렇게 한 번씩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는 시간을 감사하고 매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들. 인생의 우선순위를 다시금 재정립해주게 하는 깨달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무얼 쫓는지조차 알지 못하지만 어디론가 바삐 가려는 발걸음을 붙잡고 인생에서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만약 내게 앞으로 얼마간의 시간이 있다는 걸 깨달아 버린다면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나의 행복,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는 마음, 배려, 사랑, 가족, 친구. 이 모든 것들이 인생에 있어서 정말 소중하다는 걸 다시 상기하게 된다.


인생의 소중함과 허무함을 동시에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결혼식, 장례식, 그리고 내 경우에는 병원도 추가되는 것 같다. 그래서 병원은 내게 애증의 공간이 된다. 가고 싶지 않지만 다녀오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곳. 다음번 방문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기를 다시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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