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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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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Jun 29. 2022

뻘소리는 반사하겠습니다

잘 안들리는 게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송석지


 주말에 낚시를 다녀왔다. 하핫. 내가 낚시라니. 


 낚시에 대한 흥미도를 1에서 10까지 표현한다면 사실 난 여전히 2 정도다. 이깟 흥미도로 낚시를 다니는 이유는 오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함이다.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제인가부터 친구녀석의 제안으로 낚시를 따라다니게 되었다. 낚시대부터 음식 모든 채비는 친구녀석이 준비하고 나는 회비만 내고 따라간다. 모임은 총 4명. 대학교 때 로봇을 좋아하던 나는 학교로부터 랩실 한칸을 얻어내었다.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로봇대회수상 한번 해볼라고 안간힘을 썼던 시절이었다. 지방 대학에서 아무리 용 써도 바늘구멍 대기업을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던 시절이었다. 너도 나도 학점관리에 목메며 한쪽 겨드랑이에는 공무원기출문제집, 반대쪽 겨드랑이에는 공기업기출문제집을 끼고 다녔다. 



 학점은 엉망진창인데 프로그래밍 과목만큼은 늘 A+인 어떤 놈이 학과 건물 구석탱이에서 맨날 땜질만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날 부터인가 같은과 사람들이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다른과의 학생들이 문을 두드리는 날도 있었다. 이 때 문을 두드렸던 사람들이 지금의 낚시멤버다. 쿠하하하하. 로봇대회수상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만날 오밤중에 김밥사오고 술사오고 여친데려오고 게임을 해대는 통에 재미있게 놀기만 했던 멤버들이다. 와...벌써 22년전이구나... 멤버 1은 전공과는 전혀관련없는 사업을 하고 멤버 2는 발전소에 근무하며 멤버3은 자동차 수리를 한다. 친구라는 말을 건넬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들이다. 침 튀어가며 자랑질 안 하고 컴컴한 낚시터에 쪼그리고 앉아 서로 묵혀뒀던 쌍욕을 해가며 옛날 얘기를 나누면 배가 아플정도로 재미있다.



"쫌 들으라고 쉑끼야, 이 귀머거리 쉑끼야"


얘기하다 보면 매번 나를 향해 나오는 말이다. 친구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쬐금 성숙한 어른이가 되고 싶어서 '경청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경청에 관한 책은 많았지만 도통 경청과는 다른 어려운 얘기들만 잔뜩있어 '열고 곧바로 덮기'를 반복했었다. 책을 통해 경청을 배우지 말고 '그냥 잘 듣자' 라는 문장을 마음에 새기기로 했다.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게 쉽지 않은 사람이다. 순간 순간 다른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통에 이야기들은 잘게 조각이 나버린다. 그의 이야기는 나의 기억속에서 곡해된 채 남는 경우가 많다. 어느 때는 아예 기억이 나지 않을때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듣기 싫은 소리를 잘 걸러내는 생존능력이 생겼었는데 이 능력이 오동작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들어야 할 말도 걸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귀가 진짜 안들려서 그렇잖아, 쉑끼야"


오동작을 할 때면 어김없이 친구에게 둘러대는 말이다.


"이 쉑끼봐라, 야, 이번에는 내가 왼쪽에서 얘기해썸마~ 니가 안들은거여 쉑끼야"


이제는 둘러대는 말도 안 통한다.



나는 오른쪽 귀가 안 들린다. 이제는 약 10프로정도의 청력만 남아있는 듯 하다. 왼쪽 귀를 막으면 큰 진동만 웅웅거리며 느껴지는 정도다. 이유는 모른다. 10년전쯤에 갔던 이비인후과에서는 청력은 회복이 불가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나로 듣는 것 하고 두개로 듣는 것의 차이는 내가 신경을 쓰면 들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는 차이? 정도였다. 오히려 장점이 더 많았다. 새로 들어간 회사에 조금 적응이 되면 동료들에게 제일 먼저 말했다. 



"저 한쪽 귀가 안 들려요. 이해해 주세요"



직장생활에서 듣기 싫은 뻘소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허공에서 뻘소리 말풍선들이 떠돌아다닌다. 나는 그 말풍선들이 내 귀에 당도했을때 "반사" 할 수 있는 뻘소리 반사허가증을 발급 해 놓는 것이었다. 어느 직장상사는 내가 하도 '반사'를 많이 해대니까, "야 너 일부러 안듣는 척 하는거 아녀?" 라고 해서 깜놀 한 적도 있다.



 회사생활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나는 이 스트레스가 나의 청력을 점점 더 악화시키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회사내에서 반사허가증은 매우 쓸모가 있었지만 퇴사를 한 지금 반사허가증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직장생활 스트레스로 인해 얻은 두통, 원형탈모, 어깨결림, 청력손실(?) 은 퇴사를 하며 바로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나 독했던지 그 여독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1년 10개월이 지나자 원형탈모와 두통, 어깨결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 그래, 그래, 직장생활의 스트레스가 원흉이었어!'



이비인후과 의사가 말했듯, 청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는 반사허가증이 쓸모가 없고 듣기 싫은 뻘소리 말풍선들을 쳐 낼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듣기싫은 말풍선보다는 들어야하는 말풍선들이 더 많이 돌아다닌다. 쓰고 싶지 않은 반사허가증이 아무때나 튀어나온다. ㅋㅋ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른쪽 귀에게 작별인사를 해야겠다. 괜찮다. 나에게는 왼쪽 귓구멍이 있으니까. 



오늘도 오른쪽 귓구멍이 반사시킨 아내의 말풍선이 왼쪽 귓구멍을 통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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