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언니의 카톡 한 줄

Q3. 워킹맘은 가정과 직장사이, 어디에서 쉬어야 할까요?

by 일하는 노진지씨

이야기에 앞서 지난 15년 동안 자타공인 ‘불량엄마’로 살아온 제가 이렇게 무거운 질문에 똑바로 대답할 자격이 있을지 걱정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경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만의 피난처 ’ 미타임’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출산 전 커리어에 대해 어떤 원대한 계획을 세웠든 관계없이, 엄마는 제 뱃속에서 나온 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해 세상의 중심이 이동하게 됩니다. 첫째가 10개월이 되는 시점, 나만 바라보는 저 작은 녀석을 두고 굳이 회사에 나가야 할까? 나한테 일이라는 게 그만큼 가치가 있을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퇴사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목소리를 내리깔고 진지하게 털어놓는 저에게, 이번에도 남편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해 주었지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엄마가 일하는 것이 유별난 세상이 아니야. 아이는 그런 세상에 적응해야 하고, 우리도 설렁설렁 부모 역할을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어. 그러니 네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해.” 라며 복직을 앞둔 엄마의 죄책감을 덜어주었어요. 그렇게 사전 합의된 면죄부를 받고 저의 불량 엄마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제 남편이 한수 위네요…)


처음엔 피곤하면 청소는 건너뛰고 밥도 대충 챙겨 먹고 그렇게 설렁설렁 살림을 하니, 주변에 도움받을 지인하나 없는 상황에서도 워킹맘이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더군요. 물론 제 나름으로 커리어 욕심을 버리고, 9 to 6 할 수 있는 조직으로 이동하는 등의 타협이 있긴 했습니다. 문제는 둘째가 생기고 난 뒤였어요.

‘애 낳고 대충 하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일하고 집에 왔는데, 두 아이가 서로 손을 내밀어 저를 필요로하더군요. 난이도는 두 배가 아니라 몇 제곱이 되고 아이의 성장에 비례해 챙겨야 할 변수가 늘어, 불량엄마 인 저 조차도 역할에서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숨이 막혀오고 직장과 집에서 짜증 내는 횟수가 늘어나 ‘그냥 떠나고 싶다’는 문장만 제 머리를 채우는데…. 당시 나 혼자 하는 거라고는 출퇴근할 때 음악 듣는 게 다인 사람이 떠난다 한들 어디로 가겠어요.


도저히 버티지 못한 어느 하루 휴가를 내고 출근하듯이 집을 나섰어요. 갈 데가 없어 조조영화를 보고, 서점에 들러 책을 사서 카페에서 독서를 하고, 공원을 산책하고 퇴근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지요. 단 11시간의 이탈이었지만 완벽하게 혼자였던 하루에 대한 감격 때문인지, 좋아하는 책을 오랜만에 읽은 기쁨 때문인지, 하루 종일 대화를 못해서였는지, 두 아이를 만난 제 에너지 레벨이 달라져있더군요. 그날 저녁 남편에게 하루 종일 어떻게 재미나게 보냈는지를 이야기하고 아이들을 꼭 안고 수다를 떨다 잠이 들었어요. 아주 오랜만에 여유 있는 엄마로 돌아갔고, 그날의 달콤함은 이어지는 업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더군요.

이른 아침 나의 미타임이 시작되는 곳


그 뒤로 저는 정기적으로 저에게 ‘미타임‘을 선물합니다. 처음에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어색해 근처 영화관-서점-카페를 순회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유명 맛집에서 혼자 줄을 서서 밥을 먹고, 나 홀로 당일치기 여행이나 등산도하고, 좋아하는 책 배경장소에 방문하여 주인공을 따라 움직이기도 합니다. 일일 체험을 등록하고, 미술관도 가고, 어떨 때는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합니다. 귀한 휴가를 누워있거나 병원 다니는데 소비하지 않기 위해, 매일 작은 운동으로 체력을 올리고 건강관리를 합니다.

인왕산 초소 책방

어느 날 한 여자 후배가 쭈뼛쭈뼛 찾아와 저에게 방해하지 않을 테니 하루만 어떻게 혼자 노는지 따라다니게 해 주면 안 되냐고 요청하더군요. 그렇게 그녀는 하루간 저와 함께 또 각자 시간을 보내는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소문이 났는지 어떨 때는 선배언니들이 같이 휴가 내고 하루 놀기를 가르쳐 달라 요청을 해 와 제가 일일 가이드가 되어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나 결혼하고 친구랑 여행온거처음이야!‘라며 감격했고, 이젠 각자의 ‘미타임’을 슬기롭게 즐기고 있어요.

서울 시립 미술관


우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기대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회사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느라 가정에서는 부모역할을 하느라 발을 동동 구르며 살고 있지요. 즐거워야 할 여행조차도 부모님이나 아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계획을 짜고 참을 인 자를 세기지요. 그래서, ‘오롯이 나를 위해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이 워킹맘에게 아니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많이 지쳐있다면, 한번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요? 하루가 너무 부담스럽다면 주말에 반나절,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기 전 한 시간이라도 혼자 있으며 자신을 챙겨보아요. 그 소중한 시간이 나를 지켜줄 거예요. (설마 그 시간에 휴대폰만 보고 있진 않겠죠? ^^)


그럼 오늘도 이만! 잘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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