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2. 일도 육아도 바쁜데… 이상하게 인생이 너무 무료해요!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 있나요? 뻔하지 않은 전개와 화들짝 놀랄만한 ‘마음의 소리’로 티키타카를 하는 주인공들의 대사를 보고 있으면 짜릿함이 올라와, 2019년 방영 당시에도 지금까지도 가끔씩 지친 하루 퇴근길 도파민 충전을 위해 보곤 합니다. 혹시 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번 봐보시길 ….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 ‘진주’의 엄마가 “어머, 그걸 왜 이제 말해? 네가 살림을 안 해봐서 모르나 본데, 바쁜데 심심해 ~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는 바로바로 해줘야지” 라며 딸의 연애시작을 남편에게 알리러 달려 나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쁜데 심심하다…. 며칠이 지나도 이상하게 이 문장이 가슴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더군요.
그때 제 나이가 딱 40을 넘긴 중간관리자였고, 9살과 5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여서 너무 바쁜 상황인데도 이상하게 무료함을 겪고 있었어요. 회사도 주부의 일도 신입기간 지나 숙련공이 되어 매번 더 무거운 과제가 주어지는 데도 마음은 심심한…. ‘뭐 재미있는 거 없나?’를 찾아 헤매는 삶. 늦은 밤이 되어서야 맥주 한 캔과 드라마를 보며 널브러지는 것이 낙이었던 그 시기를, 드라마 시청 이후 ’ 바쁜데 심심해!‘라는 아주 단순한 문장으로 겨우 정의할 수 있게 된 거죠.
코로나 초창기인 어느 날 우연히 딸아이의 책장에서 ‘Ann of Green Gable’이라는 빨간 머리 앤의 원서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넌 선물 받은걸 한 페이지도 안 읽니?” 라며 잔소리를 하는데 아이가 “엄만, 읽어봤어요?”라고 되받아치더군요. 아차… 나도 안 읽은걸 아이더러 읽으라고 했구나. 어린이용 원서다 보니 3일 만에 읽었는데, 어린이용 책이라 쉬웠던 것과 관계없이 내 인생 처음으로 완독 한 원서라는 그 짜릿함에 온몸에 전율이 오더군요.
그때부터 알라딘 중고서적에 가서 얇은 원서부터 사서 읽기 시작했고, 몇 달 후 온라인 원서독서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원래 책을 좋아하는 저였지만 독서모임에 들어가니 분위기에 고무되더군요. 매일 2시간씩 읽고 요약하고, 더 잘 읽기 위해 고등학생 이후 처음으로 영문법을 펴고, 국문 병렬독서를 하는 저를 보며 남편은 어디 대입시험 치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군요. 본격적으로 책을 읽은 후 처음 2년은, 친구를 만날 시간도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던 오랜만에 느끼는 몰입의 시간이었어요.
요즘은 초기 2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원서를 읽기를 매일 5페이지라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삶에 대한 지혜가 조금 더 생겼고, 아이와 함께 독서로 성장하고, 인생에 대해 여유 있게 대답해 줄 수 있게 되었으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는 아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어요. 그리고 ‘매일 노력하면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다시 생겼어요. 어려서부터 거리감이 컸던 영어와 이렇게 친해질 수 있다니! 영어도 내가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영역이었구나! 무료하던 제 삶에서 찾아낸 무엇보다 값진 가르침이었어요.
그래서 내 인생에 또 다른 무서운 걸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 시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릴 때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라는 에세이를 읽었는데, 달리기로 인해 삶이 단단해진 하루키의 자기 고백에 홀리듯이 러닝을 결심을 하게 됩니다. 학창 시절 체력장 400미터도 한 번도 완주하지 못했던 내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 1분씩 달리는 시간을 늘려가는 훈련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또 두 번째 몰입의 시간을 맞이했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은 수많은 시간들을 지나 지금은 잘하지는 못하지만 10km, Half 마라톤을 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하지만 정말 대단한 거죠!)
사실 저는 아직 영어와 러닝을 잘하지는 못해요. 그래도 내 인생 40년 넘게 가졌던 공포심을 버렸고 언젠가는 보스턴과 스위스 산맥을 달리고, 해외에서 살아보는 꿈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것 만으로도 스스로에게 대견하다 응원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필명이지만 이렇게 제 글을 공개하는 도전도 시작했어요.
만약 인생이 무료하다면, 내 인생에 허들이었던 문제를 하나씩 풀어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매일 10분도 좋고, 30분도 좋고 시간을 투자해서 천천히 도전해 보아요. 어려웠던 것을 풀 때 오는 짜릿함, 그 도파민으로 나를 채운다면, 더 이상 심심하기만 하진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치워진 허들은 우리에게 재미있는 새로운 시선과 기회를 만들어 줄 거예요.
지금 심심하다고요? 더 무서운 건, 우리 생에 앞으로 점점 더 심심해 질일 만 남았다는 거예요. 그러니 뭐라도 해봅시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