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_ 40대도 편의점 알바를 합니다.
40대도 한다 해, 주말 편의점 알바를.
지난달 중순쯤 세운 나의 계획은 심플했다. 일단 6월부터 8월까지, 여름 내내 3개월간의 계획. 그전에 취직을 하면 나이스샷이고, 혹 안 되더라도 계속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계획. 주중은 자소서 지옥+운 좋게 올지 모를 면접 기회+마켓컬리 물류 알바로 채운다. 주말에는 최저시급 중에 제일 만만한 편의점 알바를 한다.
알바몬을 뒤져서 3일 동안 7군데 편의점 점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간단하게 이름, 사는 동네, 편의점 경험 유무 그리고 모두 나이를 써서 보내라고 하더라구. 내 나이가 나이인지라 당연히 연락은 거의 안 왔고, 단 2 군데서 연락이 왔다.
근데 한 군데는 이틀 뒤에 이력서를 써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더니, 면접 2시간 전에 오지 말라고 했다-_- 점주님 카톡에 사진 다 봤어요, 쳇. 매너가 너무 없으시다. 안 그렇게 생기셨던데 아니 양아치세요?
스트레스가 찰랑찰랑 솟아오르려던 찰나, 거의 동시에 ‘급구’ 주말 알바를 찾고 있던, 지금 알바를 하고 있는 편의점 A지점 점주한테 답문자가 왔다. “혹시 이번 주말부터 근무 가능하신가요?”
내가 다른 편의점 경력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리라. 살짝 찔렸지만,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지. 나중에 사장님한테 들었는데 내가 나이가 많은데 편의점 경력이 있다고 해서, 폐업한 편의점 점주일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바로 주말 오후 시간을 맡길 수 있을 거란 예상으로 면접을 보자고 했던 모양이다.
암튼 다음날, 면접을 보러 갔다. 예상과 달리 사장님은 젊었다. 한 30대 중반? 나 보다 한 10살은 어려 보였다. 알바생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가 옆에 있었는데 힐끔, 조금 맘에 안 드는 눈치로 사장님을 쳐다봤다. 사장님이랑 친한 알바생인가 보네? 근데 아줌마 나이인 내가 대놓고 맘에 안 들고? ㅋㅋㅋㅋㅋ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젊은 여자가 사장님 여자친구였다. 둘 다에게 사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해서, 그러곤 있는데 어린 상전을 둘이나 모시는 기분이 좀 귀찮긴 해요? 응 ㅋㅋㅋ
느낌상 사장님은 내가 영 싫진 않아 보였고, 내 편의점 경력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았다. 사실 내 편의점 주말 알바 경력은 1년쯤 되지만 물경력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교 장례식장, 직영점으로 운영되는 편의점에서 8년 전쯤 일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벤트도 할인도 하지 않았고, 조용한 손님들이 아주 조금 들었었다. 점장도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몇 번 보지도 못했다. 편의점 크기도 작아서 상품 진열 할 것도 많지 않았다.
내가 그땐 프리랜서 칼럼니스트로 글을 써서 밥을 먹고살았기 때문에 조용하고 슬픈 분위기의 편의점에 서서 남는 시간에 칼럼을 하나씩 뚝딱 쓰기까지 했다. 직영점이라 주휴 수당도 꼬박꼬박 잘 나오는 진정한 의미의 꿀 알바였다. 알바생들이 꿀 빨며 노는 그곳이 직영점인 이유는, 그 큰 장례식장의 모든 빈소에 술, 음료, 안주를 그 편의점에서 독점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 어떤 편의점보다도 매출이 높을 것이라 직영점으로 운영되지 않겠는가, 싶다.
아무튼 나는 사장님과의 면접에서 편의점 경력에 대해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대답했고, “그래도 대충 편의점 돌아가는 건 아시겠네요?”라는 질문에 “네, 그럼요”라고 대답을 하면서 속으로 찔려하고 있었다. 다행히 면접 후 몇 시간 후에, 일하기 전에 내일부터 교육을 받으라고 연락이 왔다.
이 나이에 편의점 주말 오후 알바, 모르는 사람들은 다 나를 점주라고 생각하겠지. 어쨌든, 좋다. 젊은 사장님 땡큐. 편의점은 최저시급도 안 주려는 악랄한 점주들이 있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 사장님은 그런 기본적인 건 지키는 모양이다. 일하는 첫날 알아서 3개월 계약서도 쓰자고 했다. 다만 역시나 내가 손이 느려서 교육을 9시간 받았는데, (보통은 6시간 받는다고 한다-_-) 그건 최저시급의 70%로 책정한다고 했다. 뭐 그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쒀!
사장님한테도 교육을 받고, 사장님 여친한테도 교육을 받았는데 두 사람은 좀 스타일이 다르다. 사장님은 일단 계속 투덜댄다. 표현도 좀 거칠고 극단적이다. “건물주는 쓰레기”고, “주말 오전 알바의 일 솜씨는 완벽해”라고 말하는 식이다. 계속 이 넘 저 넘 미친 넘, 하면서 얘길 하길래 좀 거슬렸다. 요즘 세상에 문신은 흔한데도, 아, 이 사장, 쫌 양아치 아닐까, 의심에 의심을 좀 했더랬다.
하지만 여친과 본인이 뽑은 알바생들을 보고 조금 마음을 놓았다. 여친은 전에 패스트푸드 업계에서 일을 했다고 하는데, 조곤조곤 잘 알려주고 상냥함이 있는 말투라 사업을 해도 잘 어울리겠다 싶었다. 나 이외에 다른 알바생들을 보니 다 아주아주 얌전해 보이는 스타일들이다. 그래서 살짝 사회성 없어 보이기도 해? 암튼 사장님의 편의점은 꽤나 잘 된다. 크기가 큰 편이긴 하지만 골목 안 쪽, 아파트 앞 쪽에 있어서 길가만큼 사람이 많이 오진 않을 거라고 예상했건만 웬걸, 장사가 꽤나 잘 된다.
알고 보니 사장님이 나이 많은 나를 뽑은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 주말 오후 알바들이 자꾸 진상 손님들이랑 싸워서 경찰도 오고 해서 요 몇 달 새 몇 명이나 바꿨는지 모른다는 거였다. 그래서 어른 알바가 있으면 그런 일이 안 일어날까, 싶어서 실험 삼아 뽑은 모양이다. 그런 거였군. 어쨌든 틈새시장 같은 걸 찾은 거 같아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2주간 주말 알바를 해 본 결과, 토요일 8-10시 사이가 아주 바쁘고, 일요일은 대체로 한가했다. 화장실을 요구했다가 없다는 답변을 들은 한 40대 여자가 조금 기분 나 빠보였던 것을 빼고는, 다행히 진상은 없었다.
어차피 CCTV로 다 보고 있을 테니까, 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척한다. 내 전 타임 알바가 종량제 봉투를 좀 접어 놓으라고 해서, 조금도 기분 나쁘지도 않은 채 앉지도 않고 서서 100장쯤 접어놨다. 손님도 없는 한가한 시간에 한 40분은 꼬박 접었던 것 같다. 하필 열심히 접고 있는데 사장님과 그의 여자 친구가 와서 지나치게 성실한 이미지 박힌 것 같기도 하고? ㅋㅋㅋ 매출을 살펴본다, 금고에 돈을 뺀다 하면서 둘이 낄낄 거리는데, 거, 연애질은 좀 일터 밖에서 하면 안 되겠니?라는 말이 목구멍 근처를 간질간질 대다가 다행히 사라졌다.
요즘 내 편의점 알바의 복병은 단 한 가지다. 사람 제일 많은 시간에 오는 상품들 스캔하고 정리, 진열하는 거? 아니다. 진상 손님들? 아니다. 담배 이름을 브랜드명이 아니라 뒤에 이름으로만 말하는 손님들? 아니다. 젤 바쁜 시간에 택배나 픽업시키는 손님? 도 아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다음 편에 말씀드리겠다,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