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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리짱 Jul 05. 2024

예비 1번과 슬픔 비용 95,000원

때로 어떤 일들은 이유 없이 벌어진다 

예상대로였다. 저번 주에 본 면접에서 떨어졌다. 1분 자기소개 때부터 너무 절고 대답도 제대로 못해서 어차피 떨어질 걸 알고 있었지만, 사람 맘이란 참 간사해서 요행이란 걸 기대했나 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8개월짜리 계약직 면접의 결과는 예비 1번. 예비 1번의 유효 기간은 딱 한 달. 



내가 면접을 봤다는 사실과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건 친구 1명뿐이다. '다음번엔 잘 될 거다. 맛있는 거 먹으라'는 의례적인 위로를 받았다. 하긴 나도 그 친구를 뜨겁게 위로해 준 적은 없는 것 같다. 언제나 내 생각하기에 바빴다. 이번엔 나라도 나 자신을 뜨겁게 위로하고 싶어 져서, 동네 마트에 가서 요즘 내 형편엔 사치인 조리음식을 사서 먹었다. 


사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마켓컬리 물류센터 알바를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제 마켓컬리 알바를 들어가기 직전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진짜 갑자기 오른 손목을 삐끗했다. 느닷없이, 어떤 전조도 없이, 뭘 들고 있거나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미세한 통증이 있었지만 경미했고, 손가락도 멀쩡하고 멍이 들거나 하지도 않아서 그냥 알바를 게시했다. 


오른손에 힘을 주면 통증이 있어서, 거의 왼손에 힘을 주고 무거운 물건들을 들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오른손이 걱정되는 거다. 오늘 일도 쉬고 병원부터 갔다. 요즘 건강 염려증이 생겨서 빨리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진단을 받고 괜찮다는 얘길 듣고 싶었다. 


내가 건강염려증이 생긴 있유가 있다.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수술과 시술을 연달아 받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전 직장에서 3년 일하고 받은 퇴직금의 절반을 병원비로 써야 했다. 엑스레이 결과지를 보면서 "모양이 좋지 않다"던 의사의 표정이 어두워 보여서 겁을 잔뜩 집어 먹었고, 큰 병일까 봐 한 달은 인터넷 카페만 보면서 끙끙 앓았다. 그 순간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웠는지 모른다.  결론적으로 한 부위는 다행히 정상으로 나왔고, 다른 부위는 수술로 떼어냈고 경과가 좋았다. 


그 후 몇 개월은 먹는 것도 신경 쓰고, 몸에 좋은 채소랑 과일 위주로 먹고 그랬는데… 편의점 음식, 초콜릿, 케이크 등을 마구 먹는 요즘의 나를 보면 사람 맘은 진짜 간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 손목 때문에 정형외과에 갔는데 치료비가 92,000원, 약값이 3,000원, 도합 95,000원이 나왔다. 95,000원이라니 요즘에 나에겐 너무너무 큰돈이다. 어제 마켓컬리 물류센터 저녁시간 포함 9시간 노동한 대가가 78,000원인데. 하하하하하. 느닷없이 95,000원을 병원비로 쓰게 됐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또 내가 우는 게 우는 게 아니야.


손목 엑스레이 찍고, 초음파 찍고, 주사 한 대 맞았을 뿐인데 말이다. 문제의 초음파가 비급여라 5만 원이나 한다고 했다. 의사가 초음파 하는데 진짜 한 2분 걸렸나? 삼성페이 결제를 하는데 핸드폰을 쥔 손이 진짜 부들부들 떨렸다. 요즘엔 무슨 비용이든 내 하루 노동의 대가랑 비교하게 된다. 1시간당 9,860원. 요즘 나의 노동은 최저시급이니까. 동네 병원에서 진료 20분 받고 92,000원을 쓰다니 ㅠㅠ 


네이버에서 과잉진료가 없다는 댓글이 많아서 찾아갔는데, 다 댓글 알바였나 보다. 그런 것도 구별 못하는 내가 조금 한심스러웠다. 개원한 지 얼마 안 돼서 깨끗하고 전형적으로 친절하고 과잉진료를 하는 개인병원 같았다. 연식이 오래되고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는 병원에 갔어야 바가지를 안 썼을 텐데... 


진단 결과는 손목 삼각인대에 염증이 조금 있는 게 다라고 했다. 그런데 비급여 초음파도 모자라, 무슨 무슨 효과가 있는 10만 원짜리 비급여 주사를 맞으라고 했다. 됐고, 일반 주사로 맞겠다고 했다. 다음 주에 다시 내원해서 손목 도수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지만 다시 볼 일은 없을 거예요, 친절하지만 병원비 더럽게 비싸게 받는 의사 선생님-_- 과잉진료 없는 병원 찾기가 진짜 사막에서 바늘 찾기 같다, 요즘은. 


오늘 면접 결과 예비 1번 결과를 들은 것보다 병원비와 약값으로 95,000원을 쓴 게 더 쓰라렸다. 그 돈의 가치가 요즘의 내게 너무너무 크다는 것이 슬펐다. "제 손목은 갑자기 왜 삐끗한 거예요?"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해서 손목에 무리를 준 것이 쌓여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럴 수도 있어요." 


의사 말이 그랬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 말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 하루였다. 그러니 너무 한숨도 쉬지 말고, 나의 오늘에 어떤 이유도 달려고 애쓰지 말자. 때로 어떤 일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벌어지니까. 그저 그렇게 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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