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과로사한다고 했던가? 지금도 천근만근한 몸을 이끌고 동네 투썸플레이스에서 냉방병 걸릴 것 같은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매주 금요일에 연재 글을 올리겠다는 브런치와의 약속, 아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을 야무지게 지키고 싶어서다.
이번 주에는 마켓컬리 알바를 2번 다녀왔다. 지금까지 총 4번을 갔다. 첫날엔 너무 정신이 혼미하고 체력이 달려서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혹시 몰라 갖고 갔던 빵을 2개나 먹었고(저녁으로 고봉밥을 먹고 3시간 후다…), 이 날은 식당 식판밥도 맛있게 먹었다. 2번째 갔을 땐 어라? 할 만 한데? 했다. 이 날까지도 식판밥을 괜찮게 먹었다.
그러나 이번 주, 3번째와 4번째로 간 마켓컬리 물류센터 알바는 그야말로 헬이었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어 이 나이에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하루에 2만 보쯤 걸었고, 식판밥은 마켓컬리 알바 다녀온 사람들이 다 얘기하듯이 맛이 없었다(나 5년 전에 쿠팡 알바 갔을 때는 고기도 나오고 그랬는데, 컬리는 무슨 채식주의자 영양사가 짠 밥상처럼(사실 반찬의 퀄리티와 단백질이 심히 부족한 식단 구성을 볼 때 영양사가 있는 지도 미지수다… 그냥 컬리에서 물류센터용 한 끼 식사 비용을 아주 적게 책정한 거 같다. 직원 복지가 아주 그지 같아). 풀떼기만 주거나, 김치만 3종류를 주기도 하고 ㅋㅋㅋㅋㅋ 언제나 국엔 건더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입맛만큼은 진짜 까다롭지 않기로 유명하고, 웬만큼 인기 없는 식판밥도 다 맛있게 먹는 사람인데 그런 내 입에도 별로 맛이 없다면 평균 입맛을 가진 사람들한텐 정말 더럽게 맛이 없다는 얘기다.
엊그제 마켓컬리 알바를 할 때는 몸도 마음도 괴로워서 오랜만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게 병이 없었다면, 중간은 없고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양극성장애가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경제적으로 대책 없는 어른은 되지 않았을 텐데, 하고. 하나마나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문득 너무 억울한 거다.
소설 <은교>에 나오 듯이,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 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나의 병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그저 랜덤으로 운 나쁘게 내가 당첨됐을 뿐이다. 약도 잘 먹고 있는데 약발도 잘 받고 있는데, 의지가 약해질 때마다 병 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근데 병 탓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의 오늘을 나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실은 나도 일주일에 2번만 가도 주휴수당을 가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쿠펀치(알바를 신청하고 근태 기록이 남는 앱)로 여러 센터를 동시에 알바 신청을 해도 2주 내내 몽땅 반려를 당하는 거다. 인터넷을 서치했더니 상대적으로 일하기 편한 센터(취급하는 물품의 크기가 작다던지)는 신규가 일을 시작하긴 하늘의 별따기이고, 또 쿠팡은 계약직을 주로 뽑는 추세라고 한다.
할 수 없이 마켓컬리 쪽으로 눈을 돌렸다. 마켓컬리는 주 5일을 채워야 주휴수당을 준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쿠팡에 비하면 손해다. 하지만 쿠팡은 내게 반응이 없으니 할 수 있나. 마켓컬리 김포 물류센터 상온으로 신청을 했더니 전화가 왔다. 그렇게 알바가 시작됐다. 가서 보니까 내가 가는 오후 타임엔 거의 4, 50대 여성들이 주를 이뤘다. 이 물류센터는 40대를 선호하는 모양이다?!
김포 물류센터는 2021년에 생긴 센터로 총 2만 5000여 평 크기, 서울 장지 물류센터 등 기존 물류센터 4곳을 모두 합한 면적의 1.3배 규모라고 한다. 어쩐지 툭하면 길을 잃을 만큼 넓더라니, 어쩐지 화장실이랑 식당이 깨끗하더라니.
물류센터는 취급하는 물품에 따라 냉장, 냉동, 상온으로 나뉜다. 5년 전에 쿠팡에서 3주 내내 일했었데, 그때 경험해 본 결과 나는 상온이 제일 나았다. 냉장, 냉동은 너무너무 춥다. 나는 추위를 엄청 많이 타기 때문에 더워서 땀이 삐질삐질 나는 쪽이 더 잘 맞았다.
상온은 다시 피킹, QPS, 패킹으로 나뉘었다. 피킹은 카트를 밀고 물류센터 내부를 돌아다니며 고객 주문 상품을 골라 담는 집품 과정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정이고 4번 중 3일은 피킹을 했다. 작은 PDA에 적힌 번호로 가서 상품 바코드를 찍고 카트 바구니에 넣고 몇 십 개를 채우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바구니를 올린다. 이걸 하루 종일 반복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물건의 무게다. 사실 센터에 따라 굉장히 무거운 물건, 특히 내 힘으로는 도저히 들 수도 없는 물건(쌀 20kg이라던지 ㅠㅠ)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김포센터는 그런 물건이 거의 없다. 무거워도 3kg짜리 설탕 3개 뭐 그 정도?
특히 피킹은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고, 걷는 것엔 좀 자신 있는 내향인에게 제격이다. 카트를 밀고 미로 같고, 지게차가 끝도 없이 튀어나와 무섭고, 관리자들이 계속 속도를 내라고 소리를 질러대서 피곤하고, 공기도 나쁘지만 온전히 혼자 일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담고, 걷고, 올리고를 반복하면 하루가 간다. 그러면 세금 떼고 일당 78,000원이 다음 날 들어온다.
반면 나는 패킹과 QPS가 힘들었다. 패킹은 마지막 공정, 즉 피킹한 상품들을 종이 박스나 비닐에 담아 포장하는 일이다. 하루 종일 서서 쉴 틈도 거의 없이 계속 포장을 해야 한다. 계속 한곳에 서 있는 게 너무 힘들었고, 컬리 특유의 종이 테이프를 박스에 붙이는 것도 힘들었고, 비닐에 담는 건 더 번거로웠다. 에어캡으로 싸야 하는 물품과 종이완충재로 싸야 하는 물품 등도 많아 힘들었다. 공간이 너무 더웠다. 나한텐 힘들지 않은 구석이 없었던 거 같다 ㅋㅋㅋ
QPS 시스템 (사진 출처ㅣ digitaltoday 인터넷 기사)
QPS는 마켓컬리가 김포 물류센터에 적용한 자동화 시스템(QPS(Quick Picking System))의 이름인데, 요게 아주 물건이더라. 신기하긴 했지만 이것 역시 쉴 틈 없이 계속 일을 해야 해서 현기증이 났다. 레일을 통해 내 앞으로 상품들이 온다. 작은 화면을 보고 알맞은 상품을 골라 바코드를 찍으면 내 위치를 기준으로 뒤 쪽에 놓인 수백 개의 상자 중에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방향을 보여준다. 그 방향으로 뒤를 돌면 불빛이 반짝이는 상자가 있다. 그 상자 안에 물건을 넣으면 된다. 물건의 부피가 다 작아서 힘은 안 드는데, 대신 정신이 없다. 내가 기계 부품이 된 기분이고, 옆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빠르게 하는 척해야 한다. 이게 무척 부담이다.
밥 먹는 시간 1시간 빼고 쉬는 시간은 10분뿐이다. 내가 갔던 오후 타임은 그랬다. 그 넓은 물류센터에서 휴게실로 갔다 다시 오는 시간이 총 4분은 걸린다. 화장실 갔다가 물 한잔 마시고 한 1,2분 앉아 쉴 수 있나? 그나마 휴게실도 자리가 많지 않아서 점심 먹고 나서 가보면 앉을자리도 없다. 진짜 노동 착취도 이런 노동 착취가 없는데 ㅠㅠ
물류센터 노동 중에 가장 좋았던 시간은 저녁을 딱 먹고 나와 CU편의점에서 1,500원이나 주고 옥동자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면서(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선 600원인데!) 잠깐 바깥바람을 쐴 때였다. 날씨가 더워서 옥동자는 금방 녹았고, 더럽고 냄새가 날 것으로 추정되는(일부러 냄새는 안 맡는다) 안전화 위로 아이스크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꼭 내 눈물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의 이 고됨과 괴로움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