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 소리를 내 속 시원하게 울고 싶다는 생각을 할 뿐, 정작 눈물은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울지조차 못하는 나, 남들처럼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다. 엊그제 면접도 폭망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처럼 대답하는 사람을 뽑아줄 수는 없다. 조금의 희망도 없이 폭망 한 면접 그 자체.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다시 취업을 하기 위해 올 4월 중순부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으니. 정규직 3군데, 계약직 3군데에 원서를 냈는데 계약직 3군데만 서류 합격을 했다. 그중에 두 군데가 면접일이 겹쳐 총 2군데 면접을 볼 수 있었다.
1년 6개월짜리와 8개월짜리였다. 1년 6개월짜리는 돼도 가야 하나, 망설였던 자리였다. 월급이 최저시급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기관일수록 일은 많고, 야근도 많은데 월급은 적고, 야근수당도 당연히 없다. 다대일 면접은 처음 본 것 같다. 그동안 일대일 아니면, 다대다 면접만 봤었다.
이틀 내내 면접 연습을 했지만,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고 4년 만의 면접이라 영 감도 오지 않았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내 바로 앞 앞에 면접을 본,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화장기 없는 얼굴의 지원자가 사색이 되어 돌아오는 걸 봤다. 꼬리질문이 많았나? 더 긴장이 됐다. 나 바로 직전에 면접을 보러 간 지원자는 나만큼이나 연식이 있어 보였다. 너무 편안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면접에 진심인 것 같아 보이질 않더니 역시나 면접 시간이 짧았다. 드디어 내 차례.
1분 자기소개부터 절었다. 유튜브에서 ‘면접왕 이형’이 툭 치면 바로 기계처럼 나올 수 있도록 1분 자기소개를 연습해야 한다고 하던데… 난 1분 자기소개조차 완벽히 외우질 못한다.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제대로 마무리도 못하고 지원동기로 넘어갔는데 역시 말하려고 했던 내용의 반 정도밖에 말을 못 했다.
면접은 기세다. 나도 알지, 이론은ㅜㅜ 일단 기세 좋게 시작을 해야 면접관도 호의를 갖게 되고 면접자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면접 관련 유튜브 영상을 닳도록 봤지만, 뭔가를 외워서 자연스럽게 말하는 거, 이젠 정말 자신이 없다. 다니는 병원에서 처방받아 인데놀도 2시간 전에 먹고 갔지만, 터질 듯한 심장박동이 조금 느려질 뿐 쿵쾅거리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면접관들은 의아할지 모르겠다. 나처럼 나이도, 경력도 많은 사람이 신입보다 더 덜덜 떨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거. “경력이 제일 많으시다, 신입 자리인데” “월급이 적은데 뭔가 결심한 바가 있어 직무 전환을 하려는 것인지” “제가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공백기엔 뭘 하셨는지” “집도 먼데 다닐 수 있겠는지” “작은 곳인데 일하면서 답답하진 않겠는지”.
다시 복기해 보니, 뭔가 띄워 주는 척하면서 내가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다고 건방지게 굴지 않을지를 집중적으로 물어본 것 같았다. 압박질문이나 NCS 면접 특유의 상황질문, 산업 관련 질문 같은 게 없었기 때문에 마음은 조금 편해졌지만 페이스에 말렸다고 할까. 그리고 꼭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하지 않은 것이 면접에서도 느껴졌을 것 같다. 월급 적다고 두 번째 얘기했을 땐 “대체 얼마나 적기에 그러시냐”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럴 거면 서류탈락 시키지 왜 불렀어요, 쳇.
면접 결과는 다음날 바로 알려줬고 예상대로 광탈했다. 6명 면접자 중에 1명이 합격했고, 예비 합격 2명이 있었는데 나는 3등 안에도 못 들었다 ㅋㅋㅋ 그래도 이땐 “안 돼서 차라리 잘 됐다”는 마음이 있었다.
엊그제 두 번째 면접은 달랐다. 한 3일을 달달 외우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 8개월짜리지만 그래도 기관이 주먹구구식은 아니고, 시스템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뭘 가릴 처지가 아니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요즘의 내 기억력과 자신감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나 보다.
이번엔 다대다 면접이었다. 면접관이 한 7명쯤?(너무 많지 않나요? 쳇) 지원자는 3명이었다. 8개월짜리라 그런지 면접포기자가 다수 발생하여 면접 시간을 당긴다고 했었다. 크기 않은 방에 면접관들이 진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역시 1분 자기소개부터 절었다. 그렇게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절다니ㅜㅜ 또다시 머리가 새하얘져서 지원 동기도 반토막만 겨우 말했다. 아니 1분 안에 자기소개랑 지원동기를 다 말하라고 해서 또 당황했지 뭔가.
질문들이 어려웠다. 외워서 하는 대답은 취급하지 않겠다는 듯이 당황스러운 질문이 많았다. “입사하면 가장 가깝게 일해야 할 사람 회사 내부 1명과 외부 1명은?” “... 정책에 대한 당위성은?” “... 와 관련한 최신 수치를 찾아본 적이 있는가?” 여기까진 그렇다고 치자. “여기서 일하는 게 커리어와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8개월짜리한테 인생까지 논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면접관은 저 질문을 해서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알 수 있다고 으쓱해했을까?
내가 계속 면접을 망치니 너무 시니컬한 걸까? 면접은 그저 한 편의 쇼와 같다. 대본을 가진 자와 대본 없이 임하는 자들이 계속 서로의 간을 보는 쇼. 그까짓 거 경력이 몇 개고, 면접 경험이 몇 갠데 눈 딱 감고 해치울 수 없냐고 나에게 물어보지만 글쎄… 예전엔 대체 어떻게 면접을 뚫고 입사를 했던 건지 모르겠다. 지금의 나로선 아득하기만 하다.
그 와중에 한 명의 지원자는 말을 ‘졸라’ 잘했다. 뭐랄까 그런 말솜씨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데… 나중에 떠올랐다. 피부과에서 봤던 물광피부의 20대 상담실장님. 어떤 질문에도 자신 있고 길게 답변하며 상대를 설득하는 그 야무진 어조. 별 거 없어도 뭐가 있는 듯, 당황하지 않고 알맹이 없는 대답을 그럴듯하게 포장할 줄 아는 능수능란함. 뿔테 안경을 낀 그 지원자가 대기실에서 계속 연습장에 뭘 적고 있더니 답변 외운 걸 계속 쓰고 있었나 보다.
반면에 공공기관 면접이 처음이라는 초짜 지원자와 나는 나란히 앉아서 계속 어버버 거렸다. 사회생활 경력이 15년은 되는 나와 초짜의 대답 수준이 별반 다를 게 없다니, 이렇게 쪽팔리고 허탈할 수가. 면접은 명백하게 뿔테 안경 지원자의 답변 위주로 흘러갔다.
면접은 변수의 연속이다. 아무리 준비하고 노력해도 나의 예상과는 늘 다르게 흘러간다. 경력은 분명 내가 가장 근접하고 많은데, 그걸 어필할 말솜씨가 내게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니 자신감이 자꾸 떨어지는 요즘이다.
혹자는 말할지 모르겠다. 고작 면접 두 번 보고 그렇게 좌절하냐고. 맞다. 맞는 말인데 지금 당장은 힘이 안 나서 조금 움츠리고 있고 싶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몰라서 나는 간밤에도 먹었다. 새우깡에 무알콜맥주를 마시고, 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가서 5,500원짜리 요맘때 파인트 크기를 사서 한입에 다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