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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리짱 Jul 12. 2024

세상의 끝과 마켓컬리 물류센터 알바(2)

40대 알바생의 고민, 뭐라도 되겠지

물류센터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길이 무슨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다. 하필 물류 알바를 갈 때마다 날씨 한번 더럽게 화창하다. 남녀노소 다 하는 알바가면서 왠 ‘오버’냐고 할지 모르겠다. 탄광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바람 부는 날 고층빌딩 창문을 닦는 극한 직업도 아닌데. 물론 그렇다. 하지만 사무직만 하던 내게 몸을 쓰는 일용직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 무거운 물건을 자꾸 드니 오른 손목이 아프다는 것, 띄엄띄엄이지만 2달째 가다 보니 이젠 눈에 익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 모두 나에겐 울적하게 느껴졌다.


우리 집에서 컬리 김포켄달스퀘어까지 왕복 4시간이 걸린다. 하루 8시간 일한 대가 일당 78,000원을 위해 그 머나먼 길을 갔다, 온다. 엊그제도 마켓컬리 물류센터 알바를 다녀왔다. 벌써 6번째다. 전날 밤엔 혹시나 싶어 준비물을 가방 안에 단단히 넣어 뒀다. 미니 커터칼 하나, 다이소에서 1,000원 주고 산 ‘쾌적한 메쉬 깔창’, 마스크, 그리고 에어팟.  


준비물 하나하나 반드시 필요한 용도가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미니 커터칼. 난 무조건 상온, 거의 피킹 알바만 하기 때문에 종이박스를 많이 뜯는다. 박스를 뜯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을 주문 개수만큼 카트 바구니에 담는다. 운이 좋으면 누가 먼저 뜯어 놓은 박스 안에서 물건만 꺼내면 되지만, 대개는 커터칼로 살살 박스를 뜯게 된다. 원칙적으로 커터칼은 쓰면 안 된다고 하지만 직원, 아르바이트할 것 없이 모두가 쓴다. 센터에서 주는 플라스틱칼(배민에서 음식 시키면 오는 그 조그마한 플라스틱칼말이다)로는 박스 테이프가 잘 잘리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성질만 더러워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이소 깔창은 물류센터에서 꼭 신어야 하는 공용 안전화(자기 걸 사서 신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몇 번 신지 않을 거라 구입하지는 않았다)에 깐다. 안전화 바닥이 딱딱해서 발이 아파서다. 등산화 2개를 신고 이 깔창을 깔면 하루종일 걸어도 발바닥이 무사하다. 여러 사람이 신는 신발이기에 무좀 이슈가 있어(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렇다더라) 이 깔창은 1회용으로 쓴다. 


물류센터 안이 공기가 안 좋고, 먼지가 많다 보니 마스크는 무조건 쓴다. 쌩얼도 가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긴 한데, 마침 여름이라 상온이 진짜 덥다 보니 낮에는 마스크 속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르는 건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에어팟은 알바를 오며 가며 왕복 4시간 동안 무료하지 않게 꼭 음악을 들어야 하므로 필수다. 이 비루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싶으니까 음악은 주로 아이돌들이 노래하는 케이팝을 듣는다. 물류센터에선 꽝꽝 얼린 생수병 하나와 목장갑 한 켤레를 지급한다. 



엊그제 알바는 그래도 좋았던 점들이 있었다. 첫째, 저녁 메뉴로 돼지고기가 다 나왔다. 6번 알바 중에 유일하게 고기가 나온 날 ㅋㅋㅋㅋㅋ  딱히 맛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맘에 들었다. 둘째, 알바가 손이 익지 않아서 나는 피킹 하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늘 저녁엔 2인 1조로 하라며 나한테만 다른 알바(오래 일해서 손이 빠른)를 붙여주곤 했는데 이 날엔 그러지 않았다. 내 속도가 빨라진 것인지, 나보다 느린 초짜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그래도 혼자 기분이 좋았다 ㅎ


셋째, 자주 보는 여자 직원이 러블리한 왕리본핀을 머리에 달지 않았다. 아니 무슨 소리냐고? 일터에 기분전환 삼아 왕리본핀 좀 머리에 찌르고 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론 안 될 이유 없다. 하지만 그녀의 갈색머리에 달린 화사한 분홍빛 왕리본과 시끄럽게 안전 관련 조심하라는 안내 소리와 벨소리가 시종 울려 퍼지는 물류센터와의 대비가 자꾸 내 맘을 심난하게 했었다. 예쁘게 차려입고 향수 냄새 풍기며 일하고 싶은 나의 바람과 작금의 노동 현실이 오버랩되는 거 같아서 까닭 없이 울고 싶어 졌다. 그래도 어여쁜 왕리본이 내 시야에 보이지 않으니 좀 덜 심난했달까. 


반면에 씁쓸했던 부분도 있었다. 아마도 매일 알바를 나오시는 것 같은 아마도 50대인 여자분이, 10시가 넘어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내게 말을 거셨다. 전에도 내게 한두 마디 건네시긴 했는데, 이번엔 본격 호구 조사에 가까웠다. 집이 어딘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어디서 지하철로 갈아타는지 차례차례 물으시기에 곧 애는 몇 살인지까지 질문이 올까 봐 좀 철벽을 쳤더니 거기까진 질문이 오지 않았다. 마침내 내가 탈 버스도 왔고. 비혼, 40대, 슈퍼 내향인에게 호구조사란 정말이지 당해도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무언가다. 


물류센터 알바는 이제 자체 졸업할 때가 되었나? 주말 알바도 하니까 이제 물류센터 알바는 그만둘까? 집에 사둔 다이소 깔창이 이제 2개 남았으니 딱 2번만 더 나올까?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마침 오른쪽 손목에 염증이 다 사라지진 않았는지 손목이 시큰거리기도 해서 걱정도 됐고. 


작가 김중혁의 산문집 <뭐라도 되겠지>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김동현 선수는 운동선수가 되지 않았으면 뭐가 되었을 거 같아요?"

김동현 선수가 대답했다.

"집에, 아마 짐이 되었을 거예요."

진행자나 게스트는 크게 웃지 않았는데 나는 보다가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웃기지만 슬프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집 한구석에 아무 말 없이 짐짝처럼 구겨져 있는 커다란 덩치의 슬픈 김동현 선수 얼굴이 떠올라 미친 듯이 웃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짐이 되진 않기 위해 뭐라도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김동현 선수의 심정을 알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재능'이란,(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나는 지금 우리 가족의 최고 걱정거리,  짐짝이 되고 말았다. 재능이 없어도,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남들처럼 평범한 인생을 재미있게 살 수는 있을 텐데, 그 평범한 일상을 갖는 것이 지금의 내겐 이렇게도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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