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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리짱 Jul 19. 2024

꿈이 조금 소박해서 꿈을 이뤄버린 일상

40대에도 꿈꿀 수 있는 자유가 중요하다고요

이번주 평일엔 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몹쓸 무기력증이 도진 걸까. 가족이 모두 나간 오전 9시 이후에 주로 일어나는데 점점 그 시간이 늦어지더니 요샌 11시가 다 되어 일어난다. 아점을 먹고, 스르륵 밀려드는 춘곤증에 못 이겨 12시에서 2시 사이엔 낮잠을 잤다. 여름용 냉감 이불 위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면 참 시원하구나, 느끼면서. 이런 게 소소한 행복인가 싶다가도, 마흔 다섯 백수의 낮잠이 행복할 리 있나 하면서 자기 검열을 한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서도 알고 보면 엄청 속 시끄럽다. 지난 면접에서 쌩신입 옆자리에 앉아 온통 버벅거렸던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괴롭기 때문일까?


그 와중에 힘내 보겠다고 사 먹은 스테이크덮밥이 느끼해서 슬펐다 ㅠㅠ


오늘은 브런치 글을 써야지, 미리 자소서도 써 놔야지 머리론 생각하지만 몸을 움직일 힘이 나지 않는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계속 몸이 가라앉는 기분이다. 내가 진단한 결과, ㅋ 나는 ‘계절성 기분장애 환자’다. 겨울에 울증을 경험하고 봄, 여름에 조증을 경험하곤 했는데(비교적 그렇다는 얘기지, 나는 사계절 차분하다는 말만 듣는다) 올여름은 내내 울적하다.


먹고 살만큼만 아주 간신히 몸을 쓰고 살고 있다. 주말에 편의점 알바를 하고, 가끔 마켓컬리 물류센터 일용직 알바를 가는 것. 엄청난 용기를 내어 귀찮음을 무릅쓰고 주 3회 요가를 가는 것.(시간이 다 되어 취소할 때가 많아서 주 5회 예약을 걸어둔다) 혼자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것. 주 1회 브런치 글을 쓰고, 주 1회 블로그 글을 쓰는 것. 주 1회 정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롯시 무비싸다구나 CGV 스피드쿠폰을 이용해서 한 편당 공짜~4천 원 정도로 본다) 월 1회 연극이나 뮤지컬(최대 사치)을 보는 것. 글로 써 보니 마흔 다섯 한량의 삶 같지만 나는 그저 살면서 해왔고, 할 줄 아는 방법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설거지를 할 때 이따금 아이유를 생각한다. "우울한 기분이 찾아올 때면 빨리 설거지라도 해서 그 기분에 속지 않으려고 한다"던 그 야무진 말투와 표정. 유튜브로 자주 보는 인지심리학자 김경일의 말로는 우울한 기분이 들 때 설거지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한다. 쉽게 할 수 있고, 바로바로 결과도 나타나니까. 


오늘 본 유튜브 쇼츠에서 배우 유해진은 “근데 그 말이 딱 맞는 거 같아. 저스트 두 잇. 그냥, 그냥 해야 돼. 이것저것 생각하잖아? 아무것도 안 돼. 산에 가고 싶잖아? 신발을 신어. 그럼 반이 해결 돼. 신발을 신으면 끝이야. 벗기 또 귀찮거든. 일단 신발부터 신고 고민을 하던지. 진짜 그거 되게 중요하다”라고 하더라. 설거지를 하고 바로 신발을 신는 거야, 그럼 고민의 반이 해결된다네. 


이 말이 더 내 마음에 와닿았던 이유는‘저스트 두 잇’이라고 캔버스에 분필로 써서 내 방 벽에 붙여 놓은 지 한 8년은 됐기 때문이다. 이 말처럼 내게 간절한 말이 또 없는데, 써서 붙여만 두고 8년간 우물쭈물하며 산 건가 싶고, 참 그러하다. 


어떻게든 삶의 의지를 다져보고자 구글 독스에 일기처럼 써 놓은 글들도 읽어 봤다. 4년 전인 2020년 12월, 전 직장에 막 취직했던 41살의 나는 이렇게 썼다. ‘내 꿈은 전업 작가다. 에세이와 르포를 쓰고 싶다. 그 흔한 블로그 글 쓰기도 한 달 이상 해 본 적이 없지만, 늘 책을 내고 싶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못 진지한 얼굴로 뻥을 쳐왔다. 뻥만큼은 꾸준히 계속해왔던 결과로 친구들은 나를 준 작가쯤으로 여기고 있는 듯한데, 실은 내가 책이 될만한 글은 한 줄도 쓰지 않고 있다는 걸,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 책도 안 읽고 있다는 걸 밝힐 용기는 나지 않는다.’


이 글을 읽으니 내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처럼 됐다. 설마 친구들이 그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쓰고 싶다고 말만 하는 내 말을 믿었을까 싶다. “또 저 소리네” 하면서 믿는 척해주었을 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선다.


‘“쓰고 싶다”와 “쓸 수 있을까” 사이에서 발버둥 치는 마음과는 달리 나는 매일 무탈하게 지낸다. 매일 같은 리듬을 탄다. 출근길의 허무함을 한 잔의 아메리카노로 달래고, 퇴근길의 허탈함은 걸그룹의 경쾌한 후크송으로 달랜다. 그렇게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을 오가며, 오래전 한 사무실에서 같이 일했던 이들이 쓴 기사를 인터넷으로 읽곤 불꽃같은 시기와 질투를 느끼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툭툭 털고 집으로 향한다.


2021년의 나는 링 밖을 서성이는 소심하고 수동적인 선수가 아니라 링 위에서 성실하게 경기에 임하는 선수이고 싶다. 최선은 다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매일 쓰면 돼. 오직 쓰자는 말, 새해에 내가 나에게 하는 약속은 그것뿐이다.’


정말 매일 쓰기만 하면 된다면, 적어도 주 2회는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고 있는 지금은 4년 전의 나보다는 성장한 셈이다. 그때의 나는 꾸준히 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라고 생각했겠지만 뭐라도 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꾸준히 뭔가를 한다는 것부터가 무지무지 어려운 일이다.   


그런가 하면, 2019년 9월, 40살의 나는, 왜 갑자기 존댓말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썼다. ‘요즘 솔직한 저의 심정은 그냥 쉬고 싶습니다. 돈과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오랫동안 푹 쉬고만 싶어요. 두 해 전에 TV예능에서 이효리가 했다던 말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가 요즘 제 모토입니다. 제가 충분히 쉬었다 싶을 만큼 쉬고, 아무나 될래요. 최선을 다해서 살고 싶지 않아요. 아무나 돼도 된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제 유년 시절에도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구글 캘린더를 검색해 보니 2019년 9월의 나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성당 공부 모임에 나가고, 내일배움카드로 각종 교육을 듣고, 컴활 2급 시험을 보는 등 하루하루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았다. 쉬면 안 될 것 같은 강박 때문에 너무도 쉬고 싶었나 보다. 돈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여전히 여전하지만, 오랫동안 푹 쉬고만 싶다던 나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걸까? 좀 블랙코미디적인 결말이지만, 어느 정도 꿈을 이뤘구나 싶어 웃음이 난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내 꿈은 소박한 편이었다. 푹 쉬는 것, 그리고 매일 쓰는 것.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뜻하지 않게 꿈을 이루고 나니(더 나은 사람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ㅋㅋㅋ 더 구체적인 삶의 목표를 잡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건설적인 마무리라니, 이게 바로 글쓰기의 효능인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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