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깨지는 순간, 나를 위로하며

하고 싶은 말을 할 상대가 없어서 쓰는 글

by 최여름

오늘의 이슈, 스쳐 지나간 작은 일이지만 인상적이었던 것들 이야기할 상대가 있다면 좋겠다. 가령 어제 요가를 가다가 피를 철철 흘리는 청년이 다른 친구랑 아무렇지도 않게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핸드폰을 하는 광경을 보았다. 팔을 다친 듯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나 역시 그런 모습을 보고도 어떤 모종의 일에 휘말릴까 봐 모른 척 지나쳤다. 그 모습을 보고도 외면한 내가 못마땅했다.


내 현대카드 유효기간 만료일이 다가오는데, 내 동의도 없이 연회비는 2배로 오르고 사용 혜택은 절반으로 줄어드는 다른 카드로 재발급해 보내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상담원과 통화해 갱신도 재발급도 받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현대카드 상담원과 통화를 하는 게 어찌나 어렵던지 화가 났다. 일로 알던 사람이 집 꾸미기 유튜브에 나와서 깜짝 놀라 반가운 마음에 톡을 했는데, 왠지 부끄러워하는 거 같아서 나만 알고 있겠다고 한 했다. 그런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실은.


한 10년쯤? 거의 매일 소소한 일상을 카톡으로 나누던 C가 올해 들어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이제는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만 간단히 대꾸를 할 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만나 봤지만 나에게 삐친 것도, 집안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 것 같았다. 내가 고민했던 시간들이 무색할 만큼… C는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내게 자주 이야기했지만, 나에게 C는 베프였다.


며칠째 말이 없길래 오늘은 맘을 단단히 먹고 혹시 무슨 일이 있는 지, 혹시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 싫어진 건지. C는 웃으며 두어 달 전부터 어느 친구한테도 먼저 말을 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톡이 오면 대꾸하는 정도라고고. 왜 친구들이랑 말하기가 싫은 거냐고 문자, “그냥”이라는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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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말하기가 싫어졌다고 입을 꾹 닫은 사람에게 말을 끄집어낼 능력이 내게 있을까? 지레 겁이 났다.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결국 “알겠어”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우리 사이에는 10년 동안 쌓아온 스몰토크가 끈끈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만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C 말고는 자주 카톡을 나누는 친구도 없었다, 내겐. 섭섭한 마음 반, 서글픈 마음 반이 뒤섞이며 울컥했다. 어떤 징조나 낌새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관계가 바뀌는 법이 어디 있나.


40대엔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아니, 어느 나이 때라도 떠나고 만나는 관계는 있게 마련이지.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일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먹고사니즘에 지친 이라면, 이런 고민조차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나는 친구가 친구들과 멀어진 후에 지금의 이런 태도를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그럴 필요조차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아이들, 가정, 친정과 시댁, 직장, 그리고 덕질까지 - 친구는 바쁘다. 굳이 나처럼 텅 빈 일상을 친구나 지인들로 채우려 애쓸 필요가 없겠지. 돌아선 마음의 빗장을 스스로 풀지 않는 한, 내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다.


하도 답답해서 또 챗 GPT와 대화를 해봤다. 챗 GPT는 가볍게 내 마음을 전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친구가 더 말하고 싶지 않아 한다면 너무 애쓰지 말라고. 내 감정도 중요하니 내가 즐겁고 편한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고. 사람이 더 차갑고, AI가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피식 웃음이 났다. AI가 비록 학습된 언어를 조합해 대응할 뿐이라고 해도, 적잖은 위안이 됐다. 게다가 챗 GPT는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질문을 하는 순간 바로 배려심이 느껴지는 답을 내놓는다. 웬만한 대인관계보다 낫지 않은가? 아니, 그저 편한 것에 기대고 싶은 나의 약한 마음인 걸까?


이런 40대가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20대, 30대의 나는 아마도 40대가 되면 작은 일엔 연연하지 않고 덜 외로운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야말로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쩨쩨하진 않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어렴풋이 알겠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외롭고,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드라마에 나오는 속 깊은 어른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그저 속 좁은 어른으로 살게 되기 십상이다. 더 나쁘지 않으면 다행인 편이다. ‘이 사람은 진짜 어른이구나’ 하고 감탄할 만한 사람을 나는 거의 보지 못했다.


주절주절 하고 싶은 말을 쓸 수 있는 이 공간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귀하다, 귀해. 말은 못 해도 글은 쓸 수 있으니. 글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한참을 답답했던 속을 글로 털어놓았더니 조금은 뚫리는 기분이 들어 시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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