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과 일하는 법

친애하는 나의 적, 나의 상사

by 최여름


팀장님과 나는 서로 싫어하는 사이다. 서로 눈치가 빤하지만, 어쩔 수 없게도 총 인원 3명이 앉아 있으면 꽉 차는 좁은 사무실에 주로 팀장님과 나, 단둘이 나란히 앉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팀장님과 내 자리는 붙어 있지 않고, 한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로는 떨어져 있다는 거다. 커다란 위안이라면, 내 앞으로 삼면에 칸막이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다는 것. 그 덕에 연극 티켓팅을 한다거나, PC카톡으로 맹렬하게 팀장 흉을 볼 때 등 딴짓을 할 때 들킬 염려가 비교적 적다. 여기까지 실오라기 같은 장점들을 굳이 뽑아본 이유는, 이것 빼곤 내겐 다 단점들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팀장님과 내가 어떻게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지, 왜 걸핏하면 서로 빈정이 상해 말다툼까지 가는지 몇몇 에피소드를 글로 풀어 보겠다. 참고로 나는 사람 많은 전 직장에서 3년 넘게 일하면서 말다툼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1. 야근을 부추기며, 주말에도 일을 하는 사람

팀장님은 자신이 '열정적이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정말 킹 받는다. 우선은 자신이 열정적이고, 일을 잘한다는 착각은 사실, 아주 많은 시간 일을 할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팀장님은 주중 야근도 모자라(때론 새벽 3, 4시까지 하고, 다음 날 지각을 한다) 주말에도 꼬박꼬박 출근을 한다. 삶이 곧 일인, 전형적인 워커홀릭이다. 작년까지 야근 수당을 1달에 14시간까지 받을 수 있었는데, 그것도 모자란다며 올해부터는 1달에 20시간까지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팀장님이 정말이지 기쁜 얼굴로 내게 그 사실을 알렸을 때, 난 울고 싶었다. 월급이 너무 적어 선택의 여지없이 얼마 안 되는 야근수당이라도 챙겨야 하는 입장이라는 게 슬펐다. 한 달에 20시간이나 회사에 더 있어야 하다니!(물론 나는 주로 혼자 야근할 때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나는 지인들과 “일을 잘한다는 건 무엇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는데, 결론은 정해진 시간 내에 최선의 아웃풋을 내는 것이었다. 팀장님은 일을 오래, 많이 한다. 반면에 나는 받는 만큼만 일하자,는 주의다. 뭐, 개인의 스타일이니까 거기까지는 좋다. 아무리 그래도 팀장님이 일 처리를 질질 끄는 이유 중에 하나인, 지극히 사소한 것에 집착하기는 참기 힘들다. 가령 사소한 행정 문서를 급하게 결재 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도표 안의 내용을 ‘왼쪽 정렬’했더니, 모든 도표는 ‘가운데 정렬’을 해야 한다며, "왜 일을 띄엄띄엄하냐"고 내게 핀잔을 주는 게 아닌가? 그런 지적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공공기관에서는 물품을 사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전부 지출결의서를 써서 결재를 맡아야 하는데, 쿠팡에서 한꺼번에 10개쯤 자잘한 사무용품을 샀다. 이런 건 말 그대로 ‘자잘한’ 지출이기 때문에, 나는 지출결의서 1, 2개에 몽땅 목록을 집어넣어 써왔다. 한데 팀장님 왈, “물품 1개당 지출결의서를 써서 10개의 결재를 맡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닌가? 까라면 까는 것이 회사라지만, 분통이 터져서 나 원 참. 결국 결재 문서는 4번으로 나눠서 올렸다. 납득할 만한 지시를 해주세요, 제발, 네?


한 번은 중요한 행사를 하루 앞두고 바쁘게 야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팀장님이 상장종이의 금박 테두리를 봉황이 있는 걸로 하고 싶다며, 차를 몰고 다른 동네의 문구점엘 다녀오느라 시간을 써서 또 새벽까지 야근을 하더라.(심플하게 네모난 금박 테두리를 한 상장 종이를 이미 사놨는데!) 그래서 다음 날 봉황 상장종이를 썼냐고? 센터장이 요즘엔 이런 걸 쓰지 않지 않냐고, 너무 요란하다고 해 쓰지도 못했다.


팀장님의 지론은 “이 센터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이다. 반면에 나는 중요도를 따져 중요하지 않은 일은 신경을 덜 쓰는 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부딪친다. 그렇지만 어떤 지시든, 상사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 회사 아니냐고? 맞다. 물론 나도 그러고 있다. 다만 자주 울화통이 치민다는 것을 여기에라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화병이 날 거 같다고!! 마켓컬리 알바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다시 사무실 노동자가 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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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

팀장님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가, 금세 기분이 나빠졌다가를 반복한다. 50대의 갱년기 증상인가? 싶기도 한데, 내가 아직 갱년기를 겪어본 게 아니니까 구별은 못하겠다. 아무튼 권위적이면서 동시에 감정적이다. 요샛말로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 본인이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그러니까 자주), 굉장히 귀찮다는 태도와 빈정거리는 말투를 장착해 사람 기분을 잡치게 한다. 그래서 늘 팀장님의 기분이 어떤지 살펴서 때에 맞게 대처를 해야 하는데, 하필 내가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 유형을 무척 버거워한다는 게 문제다.


‘경력직인데 내가 이것까지 말해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번번이 화를 냈다는 팀장님. 나는 당신의 완벽한 비서가 아니고, 독심술사도 아니며, 그저 직원일 뿐이다. 당연히 분명한 지시를 말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확인하지 않고 준비를 해서 혹시 모를 시간 낭비하는 것을 방지하고 싶고, 지시하지 않은 일을 내가 결정해 하고 싶지도 않다. 당신과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요, 하는 초코파이 CM송 같은 사이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 좋다. 내게 일적으로 지적할 점들이 많다고 치자. 그럼 본인은 완벽하게 일하는가, 하면 실수가 잦다. 연말에 한해 예산 지출 마감을 해야 하는 그날에, 그것도 내가 찾아내서 1달 전에 지출됐어야 하는 강사료를 누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날 만약 내가 팀장님의 실수를 찾지 못했다면, 그 강사는 과연 강사료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 때문에 회계 부서의 직원은 그 뒤늦은 일을 처리하느라, 정시 퇴근도 못했다.


한 번은 센터 행사 당일에 한참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간에, 갑자기 내게 행사 보도자료 초안을 써내라고 했다. 일을 이렇게 즉흥적으로 한다고? 어안이 벙벙한 채로 행사를 보지도 못하고, 보도자료를 쓰고 있노라니 누구한테 하소연하지도 못하고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싶어서 씁쓸했다.


내 말투가 친절하지 않아서 클레임이 걱정된다는 팀장님. 아니, 저기요? 나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면서 한 번도 클레임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내 생각에 비결은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뜨듯 미지근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 반면에 '본인이 그토록 친절하다 믿는' 팀장님은 나와 함께 일했던 5달 동안 2번의 클레임을 받았다. 최근엔, 분명 팀장님의 전화통화 소리를 옆에서 들었을 때 ‘저렇게 얘기하면 안 될 거 같은데…” 싶었던 말을 반복하기에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공용메일로 장문의 사과를 요구하는 클레임이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팀장님은 놀라운 자기 합리화의 정신승리법을 보여줬는데 "나는 클레임이 적은 팀장으로 유명"하며, “나는 같은 말이지만 기분 나쁜 말투로는 얘기하지 않았"으며(아니 굉장히 격양된 말투였다), 클레임을 건 사람이 상처가 많아서 자기 얘기를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나.


이쯤 되니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렇다고 팀장님에게 장점이 없냐 하면, 장점도 물론 있다. 일단 최근 들어 자주 일찍 퇴근시켜 줬다.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내 월급이 적어도 너무 적은 것에 대해 공감도 해준다. 하지만 너무 다른 두 사람 둘만 사무실에 있다 보니, 스트레스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을 해서 월급을 번다는 것은 어찌나 고된 일인지. 모든 직장인들이여, 여러분은 모두 챔피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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