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리하는유리 Jan 19. 2021

"임신하고도 계속 채식할 거야?"

유난스러운 채식주의자에게 묻는 열 번째 질문

엄마는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했다. 어찌나 까탈스러운지 뭐든 입에만 넣으면 게워냈고 세 달을 꼬박 입덧과 씨름해야 했다고, 나에게 투정 어린 말투로 얘기했다. 임신 초기를 넘긴 후에도 먹는 건 항상 곤욕이었다고 한 마디 덧붙이는 엄마. 나오는 날까지 온갖 고생은 다 시켰다며 나에게 자랑 가득하면서도 애잔한 표정을 짓는데 나는 옆에 앉아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다 자란 지금까지 먹는 것에 예민하게 구는 건 아마도 기억도 나지 않는 세포였을 때부터 시작한 걸까.


팀원 중 셋이 육아 휴직을 떠났다. 하나는 첫째, 둘은 각각 둘째를 가지러. 휴직 나가기 전 마지막 날까지 밤늦도록 일하던 동료에게 던진 나의 질문은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냐’였다. 살아남으려면 일단 밥은 먹어야 하니까, 더군다나 입이 두 개로 늘었으니 더 잘 먹어야 했다. 지겹도록 끊임없이 먹고 먹는 삶에서 제일 잘 먹어야 할 때가 뱃속에 생명을 키우는 때라는 건 나같이 애 없는 사람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기본 상식이 채식인의 마음속을 큰 돌처럼 무거운 고민으로 짓누른다.


채식에 대해 알아가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육류 섭취를 줄이고, 결국 나를 채식주의자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게 되기까지 넘어야 했던 산이 많았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새 요리법들을 찾아 익혀야 했고, 친구들과 함께 식당에 가기 전 미리 채식 메뉴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왜 채식을 하려고 하는지 설명하고 그게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일지 오래도록 앉아 논의해야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 선택에 대해 이유도 들어야 했고 때때로 날아오는 질문들에 변명 같은 방어적인 답변도 해야 했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도 나는 채식을 계속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질문 앞에 서니 그동안 산이라고 느껴졌던 난관들이 모두 낮은 언덕들로 보였다. 채식을 하겠다는 결정은 정말 나 좋자고 한 것이다. 세상에 내보낼 새로운 생명에게, 아무것도 모를 것에게 내 삶의 방식을 강요할 권리가 있을까?




내 삶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것도 모르던 고등학교 시절엔 스물다섯이 되면 엄마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서른이 된 지금 돌아보니 철없는 농담에 가깝다. 아기를 뱃속에 데리고 아홉 달을 지내는 건 물론이고 그 후의 계획을 생각하면 내 미래는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빠진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좋았을 걸, 주변에서 애를 가지고 낳고 키우는 걸 직접 보면서 능력만 있다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매번 깨닫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일단 상황이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 만약 아기나 나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서 더 이상 채식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통보를 듣는다면? 과연 내가 선생님 전 죽었다 깨나도 채식만 할 거예요,라고 고집부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세상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아기의 건강이다. 채식과 육식의 여부를 떠나 내가 먹는 음식이 아이가 잘 클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영양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도 두려웠던 게 영양부족이 올 수도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고기를 먹어야 힘을 낸다"는 어른들의 말이 수저를 들 때마다 불쑥불쑥 찾아들었고, 이 묵은 관념은 채식을 지향한 뒤에도 오래도록 나를 쫓아다녔다. 


고기 대신 풍부한 채소, 신선한 과일, 다양한 통곡물과 견과류를 먹고 나서 살아갈 힘이 더 강해졌다. 완전 채식을 시작한 뒤 근 이 년 후 한 피검사 결과도 문제없이 잘 나왔고 항상 낮았던 혈압도 정상으로 나왔다. 고기 없이도 충분히 사는데 필요한 모든 영양을 섭취할 수 있고 오히려 더 건강한 생활을 이어나 갈 수 있다는 증거를 내가 직접 몸과 생활의 변화로 겪었다.




임신을 해도 다르지 않다. 우리 몸을 만들고 움직이는 영양소는 똑같다. 다만 두 생명을 지탱해야 하니 더 많은 양이 필요하고, 또 새 인간을 만들기 위해 더 중요한 영양소들이 있다. 임신 몇 달 전부터 챙기면 좋은 건 철분이다. 혈액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철분이 부족하면 임신 중 빈혈이 올 수 있고 초산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임산부들이 낮은 수준의 철분 보충제를 챙겨 먹는다. 보충제 없이도 두부, 시금치, 렌틸콩, 감자, 고구마 등 다양한 채소와 콩류를 함께 먹으면 필요한 하루치 철분을 잘 섭취할 수 있다.


임산부에게 가장 필요한 영양소인 엽산은 수정 후 28일간 생기는 아기의 신경관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중에 엽산 보충제도 많이 나와있지만 역시 양상추, 시금치, 강낭콩, 비트, 해바라기씨 등을 챙겨 먹으면 자연스럽게 음식에 있는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 엽산과 같은 비타민 B군인 비타민 B12 역시 영양 효모나 표고버섯, 김 등에서 얻을 수 있다. 만약 임신 중 채식을 해서 걱정이 된다면 보충제를 챙겨 먹을 수도 있다. 그건 채식을 해서가 아니라 혹시나 아이에게 모자라진 않을까,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 때문 일거다.


채식을 한다고 해서 임신 중 문제가 더 생긴다 거나 육식을 해야만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채식을 하면 제왕절개 할 가능성이 평균보다 낮고 산후에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낮다고 한다. 채식 식단은 임신 후 모유수유를 하는 데에도 지장 없이 모든 영양소를 공급할 수 있다. 그래서 임신 후에도 충분히 채식을 이어나갈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건 나 스스로도 채식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전문 의사나 영양사와 충분히 논의한 후에 결정할 일이다.


영양만큼이나 운동도 중요하다. 꾸준히 움직이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도 먹는 것만큼이나 건강한 임산부 시절을 보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몸이 퉁퉁 잘 붓는 체질이어서 조금만 짠 음식을 먹거나 오래 걸으면 부종이 생겨 밖에 나가기도 싫고 움직이기도 싫었다. 채식을 하고 한 번도 몸이 땡땡 부어올라 터질 것 같던 그 아픔을 다시 느껴 본 적이 없다. 운동할 힘과 의지가 샘솟은 건 채식을 한 이후다. 부종이 쉽게 생기는 임신기간 동안 채식을 한다면 더 많이, 더 가볍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엄마가 된다는 생각은 아직도 두렵다. 새 생명을 세상에 내놓으면 나를 너무도 사랑하는 내가 포기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내가 없으면 못 사는 커피도 못 마실 테고 먹을 걸 사랑하는 내가 우리 엄마처럼 심한 입덧으로 고생한다면 임신 초기는 꼬박 죽을상으로 지낼 게 분명하다.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고 내가 좋아하는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기저귀 갈아 입히고 아기가 먹을 모유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더 할애할 것이다. 아, 생각만해도 벌써 자신감이 줄어든다.


그 모든 걸 알면서도 나는 채식을 지향하기 시작했던 몇 년 전처럼 조금씩 마음을 다잡고 있다. 태어날 아기에게 더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 생명 하나하나에 따뜻한 마음이 가득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건강하게 채식하는 엄마가 될 준비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