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의 소리
박물관을 걷는 이들의 발걸음 하나하나 소리가 선명하다면 어떨까. 원목이나 대리석으로 가득한 연회장에, 징 박은 구두 뒷굽이 부딪칠 때마다 나는 소리는, 그 소리의 주인공에게 눈길이 가게 한다. 박물관의 주인공은 관람객이 아니다. 관람"객"은 말 그대로 손님이다. 박물관의 주인공은 "과거"이다. 과거 긴 시간을 살아내 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철과 흙으로 남았다. 그들이 뿜어내는 시간의 소리는 침묵의 공간 내에서만 들을 수 있다.
박물관 내 일부의 공간을 할애하여, 몇몇 전시실에서는 체험형 전시를 선보인다. 또는 글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영상화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그런 공간에서는 소리가 종종 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소리다. 먼 과거는 현재와 단절되어 있기에, 과거를 이해하고자 하는 현실의 노력에서 발생하는 소리인 것이다.
역사박물관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개관시점이 옛날이어도 최근이어도 다르지 않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전시관과 전시관 사이 통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또는 전시관의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을 어떻게 관람객에게 알리고 어떻게 따라오게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다.
많은 박물관의 경우, 소전시관을 시대별로 배분한 뒤, 시간 순서대로 관람하도록 한다. 다음 소전시관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중앙 통로로 나와서, 다음 전시관을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 통로 혹은 중앙 광장에는 각 소전시실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진다.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다른 안내가 없다면, 관람객의 동선만으로는 박물관의 관람 동선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그리고, 불필요한 소리가 어쩔 수 없이 모두에게 들린다.
많은 유적지는 작은 시내를 포함한다. 시내가 경계가 되거나 혹은 해당 유적지 영역을 관통한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소리 말고,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흙길 혹은 잘 정비된 돌판 길(?)에 내 신발 밑창이 부딪히는 그런 소리 외에도, 고즈넉히 흘러가며 바위에, 튀어나온 돌에 부딪히는 맑은 물의 소리가 그 흐름대로 나의 발걸음을 이끈다. 그 어떤 종류의 ASMR보다 더 싱그럽고 더 매력적이고 더 차분하게 만드는 그런 자연의 소리다.
물살이 조용한 그런 지점도 산수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풍경으로 날 이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많은 생명들이 잠잠한 그런 겨울에도, 그 잠잠함 속에 가려졌던 다른 많은 종류의 소리들이 들린다. 굳이 소리가 아니어도, 계절을 막론하고 자연의 색깔은 언제나 다양한 느낌을 준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관광지라면 자연의 소리 말고 인위적인 소리를 내야 할 상황이 있다. 조용한 산책로라면 클래식 같은 음악을 깔 수도 있고, 면적이 좀 많이 넓은 곳이라면 긴급상황에 대한 안내 같은 것도 필요할 때가 있다. 상업적인 부분이 결합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각종 이벤트에 알맞은 배경음악을 넣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소리는 보통 스피커가 필요하다. 현대적이고 상업적인 공간이라면 스피커의 모습이 딱히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만일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미를 강조해야 하는 공간이라면, 그런 설치물도 그 공간 설계의 주제를 따라 주는 게 예의일 것이다. 물론, 그 주제를 따를 때는, 따르는 척만 해서 더 튀게 만들 것이 아니라, 제대로 따라주어야만 한다.
관람 중에, 분명 소리는 나는데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순천만정원박람회에서 특히 그랬다. 자세히 보면 티가 나지만, 대충 둘러보면 그냥 길가에 놓인 흔한 바위였다. 최대한 바위 색에 맞춰 스피커를 숨긴 흔적이 역력했다. 그냥 바위 크기만한 스피커 놓아도 나쁘지 않았을 거 같은데, 비록 작지만 이렇게까지 노력했구나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반대로, 해미읍성에서 발견한 스피커는 순천만정원에서 발견한 그것과는 완전 반대의 형색이었다. 멀리서 보아도 너무 티가 났고, 멀리서도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보안용 카메라와 스피커 같았다. 이렇게까지 색감이 맞지 않아도 되나 싶었다. (노력이 가상하긴 했다.) 축제 때 방문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아도 관심을 끄는 것이 이런 스피커와 카메라가 되면 안되지 않을까 싶었다.
전시관의 배치는 기본적으로 시간순이다. 그 안에 여러 주제를 결합하지만, 시간순이라는 대전제를 거스르는 경우를 본 적은 없다. 관람객들은 시간순으로 배치된 전시관의 흐름을 따른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 여러 전시관과 전시관 사이를 이동하는 모습과 소리가 한데 뒤엉키면, 시간 위를 흐르는 공간의 순서 또한 뒤엉킬 수 있다. 가장 효율적인 공간의 배치가, 시간 순으로 빌드업되어야 하는 역사 전시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좋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박물관이든 전시관이든, 개관시점이 최근일수록 전시관의 배치는 그 이전의 것과 사뭇 달랐다. 한 번 입장하면, 마지막 전시관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형태였다. 달리 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밟았던 곳을 다시 마주치지 않는 구조였다. (*새만금간척박물관의 경우 좀 극단적이었다. 상설전시관은 2층에 있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와 1층으로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가 건물의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관람흐름을 거슬러서는 내려가는 출구를 절대로 찾을 수 없었다.)
공간이 허용된다는 전제 하에, 관람객들이 뭐 하나라도 머리 속에 남기기에는 이런 방식의 전시관 배치가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간을 주제의 흐름에 융합시키다 보니, 전시 외 기능적인 부분(*예: 비상구 배치 혹은 화장실의 위치)을 충분히 만족시키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입장하는 관람객, 전시관을 이동중인 관람객, 그리고 퇴장하는 관람객을 동시에 마주치지 않아 관람의 흐름이 흩뜨려지지 않는다는 점이 장점이긴 했다.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기타 전시관이든, 모든 전시물 하나하나에 시간을 들여 꼭꼭 씹어먹는 방식으로 관람하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다. 낮거나 혹은 무료 입장료를 바탕으로 각지의 전시관들은 지역민을 위한 일종의 복합 문화공간의 형태를 띠며, 따라서 일회성 방문보다는 자주 가볍게 방문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가고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형태로, 단지 많은 전시물들을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큰 주제가 아니더라도 작고 다양한 주제로 사람들의 발길을 여러 번 붙잡는 모습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