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듣는 다정함.
나는 늘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느라 정작 나에게는 무심했다.
거울 앞에서는 비난이 먼저였고, 실수한 날엔 자책이 따라왔다.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은 오래도록 해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책을 펼쳤는데 낯선 요구가 적혀 있었다.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다정한 말을 한 문장으로 적어보세요.”
머뭇거리다 결국 적은 문장은 이거였다.
“괜찮아, 네가 부족한 게 아니라 지쳐서 그래.”
그 문장을 적어놓고 읽었을 뿐인데,
마치 잔뜩 긴장된 내 어깨가 풀리는 것 같았다.
내 안에서 늘 울리던 ‘더 잘해야 해’라는 채찍질이
순간적으로 잠잠해졌다.
그때 알았다.
다정한 말은 입술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몸이 버티지 못하면 말은 공허하다.
잘 먹고, 잘 자고, 매일 몸을 움직이는 것.
이건 단순한 습관 같지만,
나에게 “넌 돌봄 받을 가치가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운동을 마치고 가벼운 단백질을 챙겨 먹을 때,
밤에 억지로 새벽 기상을 포기하고 아이와 함께 늦잠을 잘 때,
러닝화를 신고 천천히 30분을 뛰며 숨을 고를 때.
그 모든 순간이 나를 향한 다정한 말이 되어주었다.
나에게 좋은 것을 제공하자 말투에도 변화가 왔다.
예전 같으면 열 번쯤 터뜨렸을 짜증이
다섯 번으로 줄어들었다.
말끝이 덜 날카로워지고, 여유가 조금씩 스며들었다.
다정함은 타고나는 게 아니었다.
꾸준히 훈련하고, 생활 속에서 쌓아가는 것이었다.
요즘 내가 자주 중얼거리는 말은 이렇다.
“나는 지금도 충분하다. 더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문장을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와 조금씩 화해하는 느낌이 든다.
영화 Eat Pray Love 속 리즈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괜찮다”는 걸 배워가듯,
나 역시 나를 다그치지 않고 그냥 존재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다정한 말은 멀리 있지 않았다.
누군가의 칭찬이나 인정보다,
내가 나에게 먼저 건네는 한 문장이 더 강력했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대로도 충분해.”
그 말을 매일, 내 몸과 생활로 연습하는 것.
그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첫 번째 다정한 실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