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버서커 이바르 더 본리스
이바르 더 본리스(Ivar the Boneless), 그는 바이킹 라그나르 로드브록(Ragnar Lothbrok)의 세 번째 부인의 큰 아들이다. 이바르는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그가 태어나고 “이바르 더 본리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도 그 이유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그의 어머니인 아슐라우그가 너무 어린 나이에 이바르를 출산해 뼈가 약한 이바르가 되었고 특히 무릎 관절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닐까 라는 추측을 할 뿐이다. 그런데도 거대한 체구로 성장을 했고, 그 신체를 이끌고 전투에 참여한 모습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게 아닐까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어쨌거나 약골로 태어난 이바르는 종종 그의 부하들이 나르는 커다란 방패를 타고 전투에 참가했다고 한다. 전투에 참가한 이바르는 순식간에 죽음의 살인 기계로 돌변했다. 몸은 약골이지만 그의 상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했기 때문에, 보통 활 보다 더 긴 활을 사용하면서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그는 특히 다리가 많이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전투에 나서게 되면 언제나 앞장을 서는 용맹스러운 바이킹 전사였다.
그런데 이바르의 아버지 라그나르 로드브록은 그런 아들, 이바르가 점차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바르 더 본리스의 아버지 라그나르 로드브록, 그는 북유럽 바이킹 중에서 가장 전설적인 바이킹 전사로서 영국과 프랑스를 정벌한 위대한 바이킹 수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킹 전사인 로드브록이 아들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무언가 인간으로서 고민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아이슬란드 신화 편에 기록된 로드브록의 이야기는 아들 이바르에 대한 고민을 엿보게 한다. 그는 특히 이바르가 자신보다 더 유명해지고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은근히 염려하는 듯했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인지 로드브록은 더욱 열성적으로 9세기 중반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수많은 기습공격을 감행하고 온 힘을 다해 덴마크에서 수많은 내전을 치르게 되었던 것인지 모르겠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아무튼 아들 이바르는 버서커(bersérker: 광기 어린 전사)였다. 그는 엄청나게 잔인하고 폭력적인 바이킹으로 이름을 날린다. 그가 버서커로 자리하게 된 데에는 이바르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보완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을 것이고, 특히 아버지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는 듯했다.
이바르의 아버지 라그나르 로드브록이 잉글랜드를 침공한 후 노섬브리아의 에일라 왕에게 붙잡혀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골방에서 죽어가는 참형을 당하자 이바르는 아버지의 복수를 꿈꾼다. 그의 잔인하고 강인한 바이킹 전사로서 버서커의 모습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바르의 이름은 마치 저승사자를 대표하는 고유명사처럼 불리게 된다.
이바르는 아버지 복수뿐 아니라 잉글랜드 전역을 완전히 정복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서기 865년 이바르는 아버지의 죽음 후 잉글랜드 정벌을 결정하고, 지금까지 했던 어떤 공격보다 규모가 큰 잉글랜드 전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이바르는 형 할프단(Halfdan)과 우바(Ubba), 그리고 동생 올라프 더 화이트(Olaf the White)와 뱀눈 시구르드 등과 함께 머물고 있던 아일랜드 더블린을 출발해 잉글랜드 동쪽 해안가로 향한다.
바이킹 군단 역시 이바르의 계획을 반대하지 않는다. 로드브록이 다스리던 지역 주민들까지 이바르의 출정을 돕는다. 그는 엄청난 위력을 지닌 바이킹 전사였기에 그의 부대는 위대한 오딘의 부대(The Great Heathen Army) 임을 자처했다. 그의 부대는 특히 덴마크와 노르웨이, 그리고 스웨덴 출신까지 참가한 북유럽 전체 전사들의 연합군이었다.
이바르의 계획은 앵글로 색슨(Anglo-Saxon) 왕국을 하나씩 차례로 점령하고 다음에는 잉글랜드 동쪽에 머무르면서 체계적으로 나머지 잉글랜드 전 지역을 차례로 점령해 가려고 했다. 이바르는 먼저 자신의 부하들에게 노섬브리아(Northumbria) 왕국으로 향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노섬브리아는 그때 자신들의 왕을 내쫓고 이바르의 아버지 라그나르 로드브록을 살해한 에일라(Aella) 2세가 지배하고 있었다.
바이킹들은 잉글랜드 동북쪽 지역을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은 이바르의 아버지 라그나르 로드브록이 처형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바르는 노섬브리아 수도 이포윅(Eforwic: 나중에 ‘York’로 개칭)을 서기 866년 11월 1일 점령한다. 이 날은 이포윅의 모든 가톨릭교도들이 성도의 날을 맞이하여 특별 예배를 드리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투는 아바르의 승리로 끝나고 에일라 2세는 이바르에게 포로가 되는 신세가 된다.
바이킹은 이 도시를 점령하고 조빅(Jorvik)이라는 이름으로 바꾼다. 비크(Vik)는 고대 북유럽 언어로 만(Bay), 항구를 의미한다. 로마 사람들은 그동안 이 도시를 에보라쿰(Eboracum)이라고 불렀는데 앵글로 색슨 사람들이 이것을 다시 에포윅(Eforwic)으로 바꾸어 불러왔다.
이바르 더 본리스를 위시한 바이킹들은 이 도시를 점령하고 난 후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가치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바이킹들은 요크를 여러 다른 지역들과 연결하는 무역 중심지로서뿐 아니라 중간 거점 도시로 이용을 한다. 요크 덕분에 스코틀랜드 북쪽으로 돌아다녀야 했던 6백 마일의 항로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요크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가치가 많았다. 점차 바이킹의 무역거래를 위한 네트워크가 하나씩 구축되어 가는 듯했다.
여하튼 잉글랜드는 이제 바이킹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이바르 아버지의 원수이자 요크를 통치하던 에일라(Aella) 왕도 바이킹 전사들이 체포해 처형을 한다. 앵글로 색슨 연대기에는 단순히 '노섬브리아 왕이 처형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북유럽 신화에는 앵글로 색슨의 에일라 왕의 최후가 아주 잔인한 종말을 맞은 것으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라그나르 로드브록이 오래전부터 느꼈던 것처럼, 이바르는 그의 아버지를 능가하는 바이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바르가 잉글랜드 침공을 완료하고 몇 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허약한 체질 때문인지 그만 숨을 거두고 만다. 이바르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성취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가 어디서 죽었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애석함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소문에 의하면, 이바르는 아버지가 죽은 잉글랜드에 묻히기를 원했기에 그의 시신을 그가 머물러 있던 더블린에서 잉글랜드로 이송해 와서 묻었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17세기에 이르게 되면 잉글랜드의 렙튼(Repton)이라는 마을에 있는 교회 공동묘지에서 엄청나게 큰 남자의 유골(7피트 정도의 키를 가진)을 포함해 250여 명의 바이킹 전사들 유골을 발견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유골이 이바르의 별명처럼 ‘뼈가 없는(Ivar the Boneless) 자’의 유골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 유골이 발견될 당시 무덤에서 함께 발견된 바이킹 검과 물소뿔로 만든 술잔(이바르는 아버지 로드브록처럼 기독교로 개종을 거부하고 오딘의 전사임을 선언했는데 물소뿔로 만든 술잔은 오딘의 신하임을 증명하는 아이콘이다.), 그리고 몇 가지 유물들이 함께 발견된다. 이 유물들은 바이킹 지도자를 매장할 때 함께 수장하는 대표적 장신구들이었다. 따라서 역사학자들은 이바르의 무덤일 가능성이 아주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 광기 어린 바이킹 전사 버서커
‘버서커’(고대 북유럽어로 'berserker')로 알려진 바이킹 전사들은 적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의 동료들 조차 두려운 존재로 여겼다. 이 미친 전사들은 반쯤 벗은 육체를 여우털로 감싸고 우람한 육체를 과시한다. 심지어 갑옷이나 다른 어떤 보호장구도 없이 전투에 나서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단지 적을 섬멸하려는 강인한 욕구만이 있을 뿐이다.
‘버서커’(berserker)라는 단어는 사실 특별히 정해진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이 오딘의 전사라는 특정의 행위와 연관이 되면서 고대 북유럽 언어인 ‘serker’라는 말과 곰을 의미하는 어미 ‘ber’가 합쳐져 전투를 하는 동안 점차 미친 전사라는 의미를 지닌 ‘버서커’(berserker)라는 말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무모한 모습으로 전투에 나설 수 있었을까? 버서커는 주로 아이슬란드 문학을 통해 알려졌는데, 대부분의 이야기 출처는 잉글링가 신화(Ynglinga Saga)에서 비롯되었다. 이 신화를 쓴 스노리 스투룰손은 버서커들이 갑옷도 입지 않고 싸움을 하는 ‘미친 싸움꾼’이라고 묘사를 했다.(* 잉글링가 신화는 아이슬란드 스노리 스투룰손이 1230년 경 고대 노르드어로 저술한 '헤임스크링글라'(Heimskringla)에 수록되었는데, 이 책은 초기 노르웨이 왕들에 대한 전설과 역사를 다뤘다.)
‘오딘의 신하들’은 갑옷도 입지 않은 채 싸움터에 나가 마치 개나 늑대처럼 격노했다. 그들은 단지 방패를 들고 곰이나 황소처럼 강인한 모습으로 달려 나가 싸움을 한다. 그들은 언제나 승리를 거두었고 결코 패배를 몰랐다고 한다. 오딘의 전사들은 훗날 전사들의 모델로서, 두려움을 모르는 용감한 전사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버서커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역시 전설적인 바이킹 라그나르 로드브록(Ragnar Lodbrok)과 그의 아들 이바르 더 본리스(Ivar the Boneless: 794-873), 즉 이바르 로드브록손(Ivar Lothbroksson)이다.
그는 대단히 폭력적이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버서커로 정평이 났다. 스노리가 쓴 신화에서 이바르는 일반적인 사람의 체구보다 훨씬 거대한 체구를 지닌 인물로 묘사를 했다. 그의 강인한 팔뚝은 다른 전사들 체격보다 상상 이상으로 큰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전설적인 체구를 가진 바이킹에 대한 이야기는 단지 신화와 전설에나 나옴직한 이야기로 판타지 주인공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마지막 바이킹으로 알려진 하랄 하르드라다(Harald Hardrada) 역시 유명한 바이킹 전사이자 버서커였다. 그는 엄격한 지도자로 소문이 났는데 유명한 바이킹 지도자 중 한 사람인 하랄 3세 시구르드손(Harald III Sigurdsson: 1015-1066)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서기 1030년 당시 15살의 나이에 스티크리스타드(Stiklestad) 전투에 참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에 관한 이야기 역시 스노리 스투룰손이 쓴 '헤임스크링글라'(Heimskringla)에 수록되어 있다.)
훗날 그가 노르웨이 왕위에 오르기 전 바이킹 전사들을 이끌고 비잔틴 왕의 수비대(바랑기안: Varangian) 대장으로 활약하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하랄 하르드라다는 키예프 루스 지역(Kievan Rus: 지금의 우크라이나)의 군지휘자로 임명되어 비잔틴 제국의 바랑기안 수비대장으로 활약하기도 한 인물이다. 더구나 하랄 하르드라다의 전설은 그가 바이킹으로서 노르웨이의 마지막 왕이었다는 점에서 각별하다고 하겠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전설적 버서커에 대한 이야기로 중세의 전설로 전해오는 베오울프(Beowulf)가 있다. 베오울프, 그는 스웨덴 남쪽 예트(Geat) 지역의 왕자로서 식인 악마 괴물 그렌델(Grendel)을 죽이기 위해 전사들을 이끌고 악마를 죽이러 간다. 괴물을 만나는 순간 베오울프는 갑자기 쓰고 있던 투구와 지니고 있던 칼을 내던져 버린다. 손에 가지고 있는 별다른 무기는 없지만 그는 여전히 삼십여 명의 전사들 힘을 합한 것 이상의 괴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아무 문제없이 맨손으로 괴물과 싸운다. 결국 괴물을 잡아 팔을 비틀어 끝내 죽여버린다.
훗날 이 베오울프의 이야기는 북유럽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난 후 하나님으로부터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부여받은 용맹스러운 인간의 이야기로 바뀌어 널리 퍼져 나간다. 마치 모세의 기적을 만든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러나 베오울프의 모습은 여전히 바이킹 전사들에게는 마치 토르처럼 전설적인 버서커로서 ‘오딘의 전사’로서 기억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