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구름 Apr 30. 2023

어쩐지 낯설어진 그녀에게

너와 우리의 거리



작년 여름이었나. 널 만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네. 겁이 많고 약해서 여기저기서 치이는 듯 보였던 너. 거친 대장고양이, 개미군단, 꿀벌, 까치와 같은 악당들이 너의 밥을 빼앗아먹어 우린 늘 걱정이었어. 미녀는 아니었지만, 계속 마주치다 보니 우리는 그만 너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있었지.


      

경계가 많던 너는 조금 이상한 자세로 밥을 먹었지만, 어느새 우리를 보면 꼬리를 들며 다가오고, 얇은 목소리로 조그맣게 대답을 해주곤 했지. 노곤하게 낮잠을 자고, 곁에서 몸을 단장하고, 무심하게 식빵을 굽던 나날들. 어느덧 너는 창가에서 우리를 감시하거나 야옹거리며 부르기까지 했지. 물론 응답하며 다가서면 넌 멀리 가버려 서운하지만 말이야.     





짜장아. 어제 목격한 너의 모습, 당황스럽더라. 평소와 달리, 점심시간에 나타나지 않아서 이상하다 했는데. 똥을 싸며 우리의 환호를 받곤 했던 그곳에서 우걱우걱 미지의 생물체를 먹고 있는 너를 발견하게 될 줄은. 우리는 충격에 그만 뒷걸음치고 말았어. 너도 느꼈지? 우리 사이의 그 어색한 기류를.



누군가 그러더라. 네가 아마 생물체들을 잘 먹고 지내고 있을 수도 있다고. 그렇지만 나는 네가 결코 그럴 리 없다고 코웃음을 쳤었는데. 은혜 갚는 고양이처럼, 너의 영양식을 우리에게 내어주는 것만은 하지 않기를 기도했어.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우린 네가 약하다고만 여겼었나 봐. 우리가 본 너의 모습이 전부였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우리와 친해진 것과는 별개로, 넌 자연의 생물체들을 먹을 수 있고, 무엇보다 길에서 살아가는 고양이인데. 어엿한 맹수(?)인 너의 모습을 확인했으니 기뻐해야겠지. 정말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그렇지만 어쩐지 낯선 이 느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보지 않아도 좋았을 아이의 사생활을 본 것만 같은 이 당혹스러움은 무엇인지.     



네 눈에는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속내를 도저히 알 길이 없으니, 너와 우리 사이의 거리는 서로 이해하기로 하자. 배를 보여주고 그르릉 소리를 내는 너, 그런 널 보며 기뻐하는 우리. 이 순간만큼은 분명, 같은 마음일 거야. 늠름한 짜장아, 앞으로 다양한 미지의 생명체들에게 흥미가 갈 수 있겠지만, 우리가 차려주는 밥도 먹을 거지? 앞으로 얼마나 함께하게 될지 모르지만, 우리 그때까지 건강히 무럭무럭 살아가자. 월요일에 만나.







매거진의 이전글 무럭무럭 자라난 우리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