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해요

소녀의 밥 짓기

by 시라리


나는 어려서부터 밥을 하고 청소를 했다.

그게 언제냐 하면 약 30년 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였다.


물에 쌀을 20분간 불린 후,

밥솥에 잠긴 쌀 위로 손바닥을 살포시 올린 후에 손등에 차오르는 물로 계량을 하지 않고 눈대중으로 적정량의 물을 넣는다.

엄마가 밥을 짓는 방법대로 배웠다.

혹여 튀어나와 솥옆에 슬쩍 붙어있을지 모를 쌀알이 물에 잠길 수 있도록 밥솥을 젠틀하게 한 바퀴 돌려준다.

압력밥솥은 모두가 알다시피 솥뚜껑에 달린 추가 생명이다.

최상의 밥맛을 위해선 귀와 코와 눈을 최대한 열어야 한다.


강불에 압력밥솥을 올려두면 10분 안으로 압이 차올라 추가 세차게 흔들린다.

그럼 불을 가장 약불로 변경해야 한다.

그 시절엔 인덕션이 없었으니 눈으로 파란 불꽃이 꺼질락 말락 한 지점을 찾아 가스레인지 버너를 조절한다.

약불이 가장 어렵다.

이때부터는 코에 탄 냄새경보를 작동시켜 두고 맛있는 밥냄새가 주방을 가득 채울 때쯤 대략 5분 정도를 불위에 둔 후 불을 꺼야 한다.

불을 끄기 전 누룽지 냄새가 나는지 감지해야 한다.

(대개 그때는 이미 불조절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김은 빼지 않고 추의 흔들림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기다린다.

압력밥솥뚜껑을 열기 전 추를 옆으로 기울여 압을 완전히 빼준후 손잡이를 비틀어 뚜껑을 슬그머니 여는데, 그럼 찰기가 적당한 밥이 완성된다.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이 절차는 8-9살 어린아이에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밥 짓기로도 성공경험을 하고 자신감을 얻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밥 짓기 하나는 자신 있다.


엄마는 아직도 이 나이 먹도록 요리에 의지가 없는 나를 보며 푸념한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시집가면 어떻게 살림하고 살래?”


지금까지는 불과 딸에 그쳤지만, 미래의 아내 그리고 며느리가 될 나를 앞서 걱정해 주었다.

오빠에게 “장가가면 어떻게 할래?”등의 말은 엄마에게서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여자로서 그리고 딸, 아내, 며느리 등 갖춰야 할 자격요건이 많았다.



어린 나에겐 상처가 됐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 말이 무용함을 안다.

무자비한 날이 센 말도 비켜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밥 짓기 말고도 엄마에게 배운 것은 무수히 많았다.

내가 혼자서도 잘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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