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인 행동은 친사회적입니다.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이타적인 행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착하다고 하지요. 이타적인 행동의 기능과 그 긍정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의문을 달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이타적인 행위의 다른 면에 대한 다른 시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혁신의 현상에 대한 것으로 제한됩니다.
이타적인 행위는 인간의 기본적인 심성 중의 하나입니다. 전혀 이타적이지 않은 사람은 뭔가 그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타적인 행동의 저변에는 항상 그 동기가 되는 법리적인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나]일 수도 있고 다른 사회적 단위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행동의 동기가 되는 어떤 시스템에는 대개 그 상위의 법칙과 규례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하위의 선은 상위의 악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들은 20세기부터 산타페 학파라고 불리는 일 군의 경제학자들과 진화 행동학자들의 주요 연구 주제가 되어왔습니다. 주류 경제학의 인간성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은 이제 많은 부분 수정되었습니다.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의 전제는 지나치게 단순한 것입니다.
이타적인 행동이라고 하더라고 그 원천에 따라 그에 대한 판단은 상이할 수 있습니다. 원천이 중요할 것이요 겉모양은 덜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자신 혹은 자신의 패거리를 위해 사는가 아니면 개인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어떤 단위를 위해 사는가가 중요한 판단 요소입니다.
[착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른의 말이나 사회 규범·도덕에 어긋남이 없이 옳고 바르다"입니다. 이 정의는 착함의 구성 요소를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되풀이하자면 이타적인, 착한 행동은 친사회적인 것입니다. 반드시 어떤 사회적 구성체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어떤 칼럼에서 '착한 사람'이란 표현이 종종 '존재감 없는 사람', '어수룩한 사람', '딱히 특징이 없는 사람', '손해 보며 사는 사람', '순종적인 사람', '의존적인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세태를 걱정하는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이타적인 행동의 이론적 근원을 탐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이 항상 좋다]라는 전제도 지나치게 단순하게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언어적 표현을 중립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호화된 언어의 트렙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편협한 사고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착한 것도 종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때 착하다고 인식되는 것을 포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혁신의 순간이 그렇습니다. 사회적인 혁신은 기존의 가치 시스템을 해체하고 새로운 가치 시스템을 이식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기존의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이것은 나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순간 착한 사람은 큰 짐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그 사람이 고집이 세다면 말이지요.
착한 사람은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인 이상을 넘어선 어떤 사회적인 이상을 갖고 산다면 우리는 당연히 이타적인 행동을 할 것이며 가끔은 혹은 자주 착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나 우리가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산다면 그것은 오히려 이기적인 동기가 되어 우리를 악한 사람 혹은 악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만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말입니다. 삶은 그래서 단순하지 않습니다.
*Title Image: Untitled # 1004 (1960-61) by Robert Ryman
Cardigan (2020) by Taylor Swift. "She went alterna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