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이 있으나 편을 짜지 않는다

초인의 길과 보통사람의 길

by 서태원 Taewon Suh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있는 일이 몇 가지나 될까요? 누구도 다른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조직이든, 선배든, 직원이든, 노예든, 혹은 동료이든 말입니다. 잘 알려진 모든 위인의 저변에는 알려지지 않는 많은 도우미가 있기 마련입니다. 역사의 액면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읽게 되는 역사는 매우 축약된 이야기일 뿐입니다.


니체가 말했던 위버멘쉬는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기다리는 초인은 개별적 인간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갈망에 대한 커다란 오해 혹은 오역이며, 상당히 위험스러운 생각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단위 안에서만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 사회적 단위가 실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공상일 뿐입니다. 위버멘쉬는 그 사회적 단위를 묶은, 개별 육체 바깥의, 어떤 것이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 이해관계를 벗어나 외부적인 것에 의해 묶이는, 같은 편이 필요합니다. 만약 누군가의 개인적인 혹은 내부적인 이유에 의해서 묶인다면 그 편은 궁극적으로 어떤 한정된 이해관계만을 추구하는 status quo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모든 이해관계에는 상충이 있고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모든 사회적인 이해관계마저도 그 심층에는 개인적인 갈망이 있기 마련입니다.


[매우 강한 팀]의 리더는 본인의 이해관계를 위해 편을 만들지 않습니다. 정치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 남을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다만, 실재하는 이상을 위해 편을 만들고 그것을 지킵니다. 그것이 어떤 이해관계를 위한 것이 아니기에 어떤 다른 편의 존재가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다만 묵묵히 그 편을 지키고 따라갈 뿐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알면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쉽고도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이 사람들이 사방을 헤매다가 인생을 마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방향 없이 편을 짜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고자 합니다. 의미 있는 질적인 변화도, 진보도 없습니다. 이해관계가 성취되면 그것이 다입니다.


개인의 삶 안에서 생긴대로 살아가고 주어진대로 살아가는 것은 답답한 일입니다. 순응하는 인간은 아무런 질문이 없습니다. 사회적 삶에서 주어진대로 살아가는 것도 답답한 일입니다. 사회의 현상이 어떻든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기득권이 있다면 변화는 회피해야 할 것이 되겠지요.


이러한 인간 본성의 족쇄를 끊는 사람에게만이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합니다. 빛은 존재 가장 깊은 곳에서 나와 그 존재를 인도할 것입니다. 누구를 따라가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본인의 위치를 보호하려고 괜히 편을 짤 필요도 없습니다. 그 빛의 길에는 누군가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일상적으로 찾게 된다면, 우리는 언젠가 그 길 위에서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초인이 아니라 보통사람의 길입니다.



*Title Image: [Danseuse] (1914) by Gino Severini


One of us by Prince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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