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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uh Sep 30. 2020

혁신과 인간의 끈

Todd Rundgren을 중심으로

연줄이란 단어 대신 끈이란 단어를 쓰겠습니다. 연줄은 특정하게 제한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주관적 판단이 다른 모든 사회적 관계를 좌우하게 되는,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데 주로 쓰입니다. 이러한 소극적인 현상으로 인해 인간관계의 중요성이 경감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관념 자체에 대해 판단을 배제하고 그 관념을 실천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게 되길 원합니다. 진정성 없는 관념의 실천은 그 관념 자체에 대한 판단과 관련 없이 "악"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인간 간의 관계가 혁신의 동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혁신은 사람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끈으로 연결되고 유지됩니다.


(1) 로라 나이로와 토드 런그렌

1960년대 말의 싱어-송라이터의 붐은 강렬했습니다. 뉴욕을 중심으로 많은 포크 계열의 다재다능한 뮤지션들이 탄생했습니다. 캐럴 킹의 1972년작 [Typestry]가 그 정점이라고 하겠습니다.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Laura Nyro의 센세이셔널했던 1968년의 데뷔 앨범 [Eli and the Thirteen Confession]은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캐럴 킹은 물론이요 조니 미첼, 패티 스미스, 토리 아모스, 케이트 부시, 신디 로퍼 등의 여성 뮤지션과 엘튼 존과 엘비스 코스텔로 등의 빅 스타들에게도 유의미한 영향을 주었지요.


그녀에게 영향받는 아티스트 중 하나가 Todd Rundgren입니다. 그의 초기 앨범을 들으면 그 연결점이 확연합니다. 작법이나 결과물에 있어서의 아방가르드한 분위기에 대한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라 나이로의 데뷔 앨범을 들은 토드는 강렬한 영감을 받습니다. 실제로 그녀를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요. 놀랍게도 20세였던 그녀는 19세였던 토드에게 그 자리에서 자신의 백업 밴드의 리더 자리를 제안합니다. 천재는 같은 계열의 천재를 알아보기 마련입니다.


토드 런그렌은 20대 중반에 정점에 오른 천재입니다. 십 대가 끝나기 전에 만나게 된 로라 나이로의 영향을 통해 그의 음악의 방향은 크게 변화합니다. 1972년 그가 24살에 내놓은 원 맨 밴드 더블 앨범 [Something/Anything?]은 대단한 명반이었습니다. 로라 나이로의 직접적인 영향이 보이는 앨범입니다. 그러나 너무 이른 시기에 정점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후 그는 24세 때 만들었던 앨범을 끝내 넘어 서지 못합니다. 퇴보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진전은 없었습니다. 개성 강한 천재의 한계라고 봅니다. 그는 영향력을 흡수하기보다는 자신의 세계에 침착합니다.


1960년 대의 아이유, Laura Nyro (1967)의 "Stoned soul picnic"


1970년대 전반 토드 런그렌이 끼친 영향력은 사실 엄청납니다. 그러나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후의 행보 때문인지 그 영향력은 저평가되는 감이 있습니다. Grand Funk Railroad를 비롯하여 다이아몬드 앨범인 Meetloaf의  [Bat out of the Hell]를 프로듀스 했습니다. 당시 토드의 제작 리스트에는 Bad Finger의 [Straight Up], Daryl Hall and John Oates의 [War Babies]와 The New York Dolls의 데뷔 앨범도 있습니다. 


토드 런그렌은 1970년대 이후 창작과 제작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작업 방법에 대해 넓고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록의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은 채 다양한 요소들을 주체적으로 흡수했습니다. 뉴욕의 펑크록과 그리니치의 전위적인 포크 그리고 고향인 필라델피아 사운드까지 다양한 요소를 창조적으로 뒤섞었던 것입니다.

 

약관을 앞둔 토트 런그렌은 로라 나이로의 제안을 아쉬운 마음으로 거절합니다. 크게 끌렸지만 이미 Nazz란 밴드를 결성해 활동 중이었기 때문이지요. 한편, 로라 나이로는 그 포텐셜을 다 피우지 못하고 매니저였고 곧 음반기획사를 차리게 되는, 유명한 David Geffen에게 큰 배신의 상처를 안기는 등 우여곡절 끝에 24세의 나이에 연예계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그녀의 은퇴 바로 직후 토드 런그렌은 야심적인 원 맨 밴드 솔로 앨범 [Something/Anything?]을 통해 로라 나이로와 같은, 아티스트의 아티스트가 됩니다.


(2) 토드 런그렌과 제트 레벨

토드 런그렌은 원맨 밴드의 프런티어답게 녹음 과정에서 스튜디오를 장악하는 특유한 방법과 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후 비슷한 부류의 다재다능한 뮤지션에게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가장 유사한 뮤지션은 네덜란드 출신의 Jett Rebel입니다.


토드 런그렌 부류답게 제트 레벨은 다양한 음악을 블렌딩 합니다. 21세기에는 이러한 언더그라운드적 접근이 더 이상 언더스럽지 않습니다. 언더가 오버그라운드와 동등한 위치를 갖게 되는 음악의 평등(?) 시대에 도달한 것입니다.


Jett Rebel (2014), "Baby"


제트 레벨은 아직 로라 나이로와 같은 영향력의 수준이 오르지도 못했고 토드 런그렌과 같은 시장의 평판도 얻지 못했습니다. 네덜란드와 그 주변에 알려진 정도입니다. 그러나 알려지는 것이 다는 아닙니다. 어떤 능력 있는 아티스트는 대중에게든 아티스트 커뮤니티에게든 전혀 알려지지 못한 채 사라집니다. 제트가 어떤 상업적인 돌파구를 찾을지 혹은 못 찾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영향력의 연결 안에서 그 가능성을 보고 기대할 뿐입니다.


최근 몇몇 미디어에서 제트 레벨이 대릴 홀 앤드 존 오츠의 14년 만의 정규 앨범을 프로듀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대단히 흥미 있는 연결입니다. 토드 런그렌과 각각 연결되는 밴드와 아티스트가 한 팀으로 모였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되는군요. 사소한 듯한 이유로 우연인 듯 혹은 필연인 듯 연결되는 이러한 관계가 일상적으로 혁신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결의 끈은 어떤 지점에서 오래 버티고 있을 때 주어집니다. 꿈이 있고 그것이 망상이 아니라면 길게 버티시길 바랍니다. 행운아가 아니라도 한 목표를 향해 걷다 보면 언젠가 뜬금없이 어떤 줄이 당신에게 떨어질 것입니다.



*Title Image: Todd Rundgren in the cover cut from his 1978 album [Hermit Of Mink Hollow]


[I saw the light] by Todd Rundgren ft. Rick Wakeman (of Yes), released i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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